‘잡은 물고기’라고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5호 23면

“언제부턴가 남편과 관계해도 느껴지지 않아요.”
40대 후반 여성 C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참 착하고 여려 보였다. 그런 그녀가 험난했던 인생역정을 털어놓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남편과 작은 회사를 꾸려 가던 C씨는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남편 때문에 속 편할 날이 없었다.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C씨의 남편은 늘 자신의 뜻만 고집했다. 성생활도 역시 일방통행으로 남편의 요구에 의해서만 이뤄졌고 C씨의 의견은 번번이 묵살당했다. 그래도 착한 아내 C씨는 그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며 맞춰 나갔다. 가끔이지만 만족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1~2년 전부터 성흥분이 줄고 오르가슴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은 C씨가 치료까지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네 문제이니 혼자 해결하고 오라’는 식이었다. 가능하면 같이 와 치료에 동참하길 바라는 필자의 요청도 듣지 않았다. 결국 C씨 혼자 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그녀의 신체적 문제들은 꽤 호전됐다. 다만 한쪽의 치료만으로는 한계를 느끼던 차에 C씨가 뜻밖의 사실을 실토했다.

“2년 전부터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요. 남편과 달리 나를 존중해 주고 내 말을 들어 주는 것 자체가 고맙고…. 아직 깊은 관계는 아니지만 이러다 정말 선을 넘게 될까 겁나 치료를 시작했던 거예요. 남편과 관계가 개선되면 잊을 수 있을까 싶어서….”

“외도는 정리하라”고 권하면서도 필자도 인간인지라 남편의 일방적인 태도에 힘들어하는 C씨가 무척 안타까웠다.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성(性) 연구서 가운데 『아메리칸 커플』이라는 저서가 있다. 워싱턴 대학 교수인 블룸스타인 박사팀이 미국 전역에서 실제 부부 1만5000쌍의 결혼생활을 연구, 그 결과를 집대성해 1983년 내놓은 책이다. 거기엔 정서적인 만족과 성적인 만족의 상관관계에 대해 의미심장한 내용이 많다. 이에 따르면 부부의 정서적인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성욕도 더 저하되고 성행위 시 흥분도 감소되는 등 전반적인 성적 만족감이 떨어지고, 이런 경향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강했다. 특히 남성에 비해 여성은 배우자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성관계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우세했다. 저자는 부부간의 성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 원하는 성적 취향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소통, 그리고 관심과 애정의 지속적인 교환이라 결론지었다.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 주는 것 봤느냐”고 큰소리치는 남편들을 보면 필자는 참 애처로울 뿐이다. 이는 한국 남편들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한 것 같았던 내 집 어항의 물고기도 돌봐 주고 정성 들이지 않으면 내 곁을 떠날 텐데, 한국 남편들은 진정한 방법은 모른 채 그저 가끔씩 변강쇠만 되려 한다.

부부간의 애정 표현은 반드시 섹스 자체는 아니어도 되며, 뭔가 거창할 필요는 더욱 없다. 『아메리칸 커플』의 연구에서도 아내가 원하는 것은 관계 시마다 매번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키스나 포옹 같은 가벼운 애정 표현이나 관심과 존중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아내가 원하는 것은 일 년에 몇 번 찾아오는 거칠고 격정적인 태풍이 아니라 저녁 나절 불어오는 뒷동산의 선선한 미풍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