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금융감독위원회 이헌재 초대위원장 "은행들 부실정리 발등의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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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음달 1일 발족하는 금융감독위원회 이헌재 (李憲宰) 초대위원장. 금융권 전반의 총감독권자로 금융계뿐 아니라 기업들로부터도 주목을 받고 있다.

李위원장이 강조하는 것은 시장과 자율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 의 정착이다.

양면적인 것 같지만 이를 위해 엄격한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인터뷰 도중 그는 "부작용이나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상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라는 말을 다섯번이나 반복했다.

- 사무국설치 문제가 시비거리였는데.

"안둔다. 비서실.기획예산 등 최소한의 기능을 위한 조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금감위 밑에 감독원이라는 실체조직이 있으므로 중간에 또 사무국을 둬 정책을 수립.조정할 이유가 없다. "

- 재무구조개선협약을 통해 은행이 대기업 구조조정에 적극 개입하게 됐다.

은행의 소유구조나 경영행태상 제대로 되겠는가.

"현재 은행이 가지고 있는 기업평가기능으로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예금 받아 대출해주기만 하던 은행이 처음부터 잘 할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은행 이외에는 할 곳이 없다. "

- 그렇다면 금감위가 개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에 직접 간섭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단 은행이 기업에 질질 끌려다니거나 자구노력 점검을 게을리하는 등 규정을 어길 경우 자동적으로 은행에 제재를 가하는 '자동격발장치' 를 만들어 놓겠다. "

- 금융기관의 부실처리에 대한 방침은.

"그동안 누적된 부실채권은 성업공사가 상당량 매입해줬다. 나머지 부실채권 및 앞으로 생기는 부실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더이상 납세자부담으로 보전해줄 수는 없다.

정부는 도울만큼 도왔다. "

- 은행이 혼자힘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부실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하는데 은행들이 우물쭈물하고 있다. 그냥 안고 있으면 부실은 더 커진다. 살아남으려면 과거의 누적된 부실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 혼자 힘으로 안되면 외국자본이라도 끌어들여야 한다. "

- 은행부실화를 어떻게 사전에 막겠는가.

"최근 감독원이 도입한 조기경보장치가 있으나 너무 느슨하다.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또 즉각적으로 조치에 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 - 부실경영에 대한 은행 임직원의 책임의식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무슨 조치를 강구중인가.

"자율인사라고 해서 모두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율원칙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앞으로는 경영능력이 없는 사람은 견디지 못하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 경영정보공개 및 소액주주의 권리보호를 위해 추진중인 제도가 있다면.

"예컨대 소액주주에게 장부열람권을 주는 등 권리를 대폭 강화하겠다. 또 외국의 공시제도를 충분히 검토해 공시대상 범위와 기준을 정하겠다.

IMF가 요구한 수준보다 훨씬 폭넓게 만들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비밀을 지켜줘 부실을 키운 점도 있다.

당분간 남용소지가 있겠지만 부작용을 각오하고라도 추진하겠다. "

- 여러 개혁방안이 현실적으로 무리없이 수용될 수 있겠는가.

"상당한 문화충격이 있을 것이다.

기존 시스템에 유연성이 없기 때문인데 적응이나 변화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으로 본다.

감독기관도 쉽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

- 스스로 인내심이 있는 성격이라고 보는가.

" (웃으며) 그렇게 느긋한 성격은 아니다.

화끈한 결과를 의식하기보다 먼저 시스템을 잘 만들고 이것이 돌아가도록 하겠다.

시스템이 작동할 때까지는 들들 볶는다고 할 정도로 압력을 가하겠다. "

만난 사람=박태욱 경제 1부장·정리 =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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