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나노튜브로 1㎜ 암세포까지 찾아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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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단백질을 붙인 탄소나노튜브. 이를 주사하면 암세포에만 가서 달라붙고, 외부에서 촬영하면 암 덩어리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서울 코엑스에서 17~20일 열린 제2차 아시아 방사선연구학회(ACRR2009)에서는 인류가 암과의 전쟁에서 이길 만한 첨단기술이 대거 선보였다. 가장 빨리 암을 진단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기술에서부터 방사선 치료 후 효과 예측에 이르기까지 분야가 다양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조기에 암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발병 부위의 지름이 약 1㎝ 이하일 경우다. 지름 1㎜ 이하의 크기도 손쉽게 찾아 내려는 게 과학자들의 목표다. 단지 암이 몸속에 있다는 것 외에도 어느 부위에, 어떤 크기로 자리 잡았는지 알아내고 싶은 것이다.

핵심은 이렇다. 영상 촬영이 가능한 물질을 나노 입자나 단백질에 부착해 이것이 미사일처럼 정확하게 암 세포를 찾아가 달라붙게 하는 것이 하나. 또 하나는 암세포에서만 독특하게 나오는 물질을 극미량일 때도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갬히르 박사는 암세포에 견고하게 붙어 있던 물질이 초음파의 강력한 에너지를 견디지 못해 떨어져 나오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를 좀 더 발전시키면 인체의 암 진단 때 미리 초음파를 전신에 쪼인 뒤 혈액 채취를 하면 초기에 암을 잡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나온다.

갬히르 박사는 차세대 반도체와 TV를 개발할 때 응용하는 탄소나노튜브 기술로 암을 진단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죽부인처럼 둥근 그물망 형태의 극미세 탄소나노튜브에 암세포만 쫓아가 달라붙는 단백질을 붙이는 데 성공한 것. 이 물질은 빛을 받으면 초음파를 발산하는 특성을 지녔다. 갬히르 박사는 이를 이용해 초기 암세포를 외부에서 촬영했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이윤실 박사는 암세포가 정상 세포처럼 스스로 죽게 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암세포는 죽지 않고 끊임없이 증식한다. 이 박사는 암세포에서 많이 발생하는 ‘HSP27’이라는 단백질이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단백질에 달라붙어 암세포가 자살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를 방해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HSP27’이 자살 유도 단백질에 붙기 전에 이 박사가 만든 단백질이 먼저 ‘HSP27’에 달라붙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유방암과 폐암 세포에 적용해 본 결과 암 덩어리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암 세포가 정상세포처럼 스스로 죽어 버린 결과다.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암연구센터 피기 올리브 박사는 암 덩어리 내 산소의 결핍 정도를 측정해 방사선 치료 효과를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산소가 많으면 비교적 예후가 좋고, 그렇지 않으면 예후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암세포는 혈관이 생길 틈도 없이 마구 자라기 때문에 암 덩어리 안의 산소가 부족한 편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탄소나노튜브(CNT)=그물을 원통형으로 말아놓은 모양. 보통 굵기는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 정도이며, 길이는 1㎝ 내외다.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와 반도체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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