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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왕의 귀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결승1국> ○·쿵제 7단 ●·이세돌 9단

제15보(108~121)=108은 A에 뛰어야 마땅했지만 쿵제 7단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108마저 두지 않으면 백△는 뭐가 되나. 피 튀기며 돌아가는 하변의 전쟁터에서 멀리 떠나 꽃구경을 즐기다가 전쟁이 다 끝나니까 슬그머니 나타난 격이 아닌가. 아무리 시간 연장책으로 두었다지만 이 수의 체면은 곧 쿵제의 체면이다. 바둑은 이 한 수로 엉망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한 가닥 체면만은 살리고 싶었다. 물론 109라고 하는 기막힌 수를 선수로 당해 바둑은 더욱 나빠졌다. 110의 후수 삶과 109로 인한 중앙의 가치 증대는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111. 이 수도 상황이 좋았다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으나 이제 흑은 떵떵거리며 둔다. 하변에서 뻗어나온 흑말에 대한 근심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116은 어쩔 수 없는 후퇴. ‘참고도1’처럼 저항하면 흑2로 끊겨 바로 끝난다. 120으로 치받아 살기는 했다. ‘참고도2’처럼 조여봐도 10이 선수라 12에 이르러 산다. 쿵제가 114나 118을 선수해 둔 이유다. 그러나 이 모든 삶이 덧없다. 영화는 사라지고 백집은 가뭄 속의 논바닥처럼 바짝 말라버렸다. 이세돌 9단은 유유히 121로 귀환한다. 그동안 백△의 시간연창책을 무시하고 하변에서 실로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박정상 9단이 예언(?)했듯 실로 그 동물적인 승부 감각에 찬사를 금할 수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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