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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지방경제]1.한파 예외가 없다…대기업도산에 '돈줄' 꽉막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우리 경제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던 지방경제가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지역의 간판 대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하청.협력관계에 있던 중소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대량실업사태와 취업난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IMF한파로 설 땅을 잃어가는 지방경제 실태를 긴급 점검한다.

"우리 고향에 큰 조선소가 생겼다는 말에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돌아와 기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먹고살 걱정에 앞길이 막막합니다.

" 한라중공업 조선소가 자리한 전남영암군삼호리에는 최근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 金모 (35) 씨는 "고향을 일으켜세우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에서 불원천리 직장을 옮겨왔지만 이제는 직원들중 벌써 30% 이상이 타지로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곳 근로자와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IMF관리체제 이후 첫 대기업 부도를 기록한 한라그룹의 부도여파를 혹심하게 겪고 있다.

한라조선의 배후도시로 개발된 목포시 하당 신도시에는 폐업하는 식당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부동산업소마다 하루 10여건의 아파트.식당매물이 쌓이고 있으나 거래는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한보철강의 부도로 침체의 늪에 빠진 충남당진을 둘러보면 특정 대기업의 부도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큰 상흔을 남기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당진군내에는 공사중단으로 버려진 상가건물만 해도 20~30여동에 달하며 짓다만 아파트만도 2천여가구가 넘는다.

외지인들이 많아 월급날이면 흥청댔던 대로변 식당들도 거의 문을 닫았다.

지방자치단체도 혹한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당진군의 예산은 지난해 1천5백억원에서 올해는 1천4백억원으로 줄었고,가뜩이나 취약한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41%에서 32%로 급전직하했다.

광주권 경제는 아시아자동차의 부채 (2조9천억원)에 짓눌려 있다.

그동안 아시아자동차는 광주를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아시아자동차와 협력업체에 종사하는 종업원은 광주 총고용인원의 35.8%에 달한다.

아시아자동차가 부도이전 매달 월급.세금 등으로 지역에 풀었던 돈은 한달 1천2백억원 규모. 그러나 지금은 5백억원대로 줄면서 광주시 전체의 돈줄이 꽁꽁 묶이고 있다.

부도이후 신규인력을 단 한명도 채용하지 않다보니 취업문이 완전히 막혔다.

지난해 3분기 1만6천명이던 '공식적인' 실업자수만 해도 4분기 1만9천명, 올 1월에는 2만6천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역 중소기업의 부도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1월까지 한달 25~50개였던 부도업체가 12월 73개, 올 1월 78개로 계속 증가했다.

사정이 어렵기는 영남지역도 마찬가지다.

부산.경남지역에서는 지난해 12월 영업정지된 지방 종금사들이 대출금 회수에 나서면서 최근 3개월사이 1천2백여개의 중소기업이 쓰러졌다.

특히 부산지역은 간판 신발업체들이 앞다퉈 동남아시아 등지로 진출한 뒤 지역경제를 지탱해주는 대기업이 거의 없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울산지역 역시 현대자동차.현대정공의 조업단축으로 미포.온산공단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납품물량이 30~50% 가량 줄어들었다.

정상가동하는 업체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현대가 버텨주는 울산' 도 이제는 옛말이 돼버린 것이다.

영남지역경제의 위축은 부산항에서도 나타난다.

부산항의 선적물량은 1월중 7백21만8천t. 지난해 같은기간 (8백16만t) 의 88% 수준이다.

만성적인 선적 체증으로 악명이 높았던 인천항에서도 이제 '체증' 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올 1월 인천항을 통해 하역된 물량은 1백90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백60만t) 의 70% 수준이다.

수도권 일대의 기업들도 영.호남 못지 않게 목이 탄다.

반월.시화공단 등 수도권 최대의 공단 밀집지역인 안산시 관계자는 "지금 안산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취업알선소" 라는 말로 요즘 분위기를 설명한다.

이같이 어려운 지방경제를 활성화하려면 근본적으로는 경기회복외에 방법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러나 지역경제인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서울 소재 대기업들의 지방투자를 촉진시켜나가야 하며, 정부가 국내 및 외국기업의 유치를 위해 과감한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별취재팀=길진현 경제2부차장·홍병기·양선희·신성식·김준현 기자·박장희 경제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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