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새 대통령의 '행운'과 '역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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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에서 국가 지도자의 성공은 두가지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다.

하나는 '포르투나 (fortuna:행운)' 고 다른 하나는 '비르투 (virtu:덕성.역량.능력)' 다.

포르투나는 지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행운이다.

반면 비르투는 지도자의 정치력.국가 경영능력이다.

위대한 지도자일수록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포르투나보다 자신의 정치 역량 (비르투)에 더 많이 의존한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출범했으나 성공적인 대통령직 수행을 보장해줄 포르투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

더구나 대선과정에서 그의 승리를 확정시켜 주었던 포르투나가 이제는 그의 성공을 가로막는 포르투나가 되고 있다. 경제위기는 박빙의 대선 경쟁에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지만, 이제 그 경제위기가 그의 대통령직 수행에 발목을 잡고 있다.

전임자와 달리 풍성한 곳간을 물려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하루 하루 국가부도를 면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는 불운이 동서화합.남북통일.신광개토시대의 개척 등 그가 오랫동안 '준비' 하고 설계해온 '김대중정치' 의 실현을 지연시키고 있다.

지역적.계층적.이데올로기적으로 영원한 소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가 만들어 낸 DJP 또는 DJT라는 승자연합은 마침내 그를 권력의 자리에 올려주었지만 자신의 정치노선과 다른 보수정치세력과의 연합은 그의 개혁정치 실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거대 야당이 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국회도 새 대통령의 '불운' 이다.

그에게 행운이 있다면 국제통화기금 (IMF) 이라는 외부세력의 존재다.

그는 "우리의 손과 발은 IMF에 묶여 있다.

우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 는 논리로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설득하고 제압할 수 있는 '행운' 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남의 손을 빌려 개혁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변덕스러운 포르투나에 맡길 위험이 있다.

현명한 지도자는 '행운' 이 찾아오기를 마냥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정치역량으로 '불운' 을 '행운' 으로 바꾸어야 한다.

새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비르투 (정치역량) 는 무엇인가.

첫째,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새 대통령은 우리의 '민족시간' 을 '세계시간' 과 일치시킬 수 있는 제도적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오늘의 경제위기는 과거의 '성공' 에 안주해 변화하는 세계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데 있다.

시대의 요구에 합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새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첫째가는 비르투다.

둘째, 사회통합의 능력이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수반한다.

자연히 이제까지 유지돼 왔던 사회적 통합의 틀에 균열이 생긴다.

새 대통령은 사회적 통합을 복원시킬 수 있는 정치력이 있어야 한다.

제도적 혁신에 따르는 고통의 분담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할 뿐 아니라 불화와 반목을 계속해 왔던 지역간에 화해를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대화의 능력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지도자가 능력있는 지도자다.

최근 성공적인 정치지도자는 예외없이 '위대한 대화자' 였다.

전임 대통령들의 실패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이야기하려 하고, 시민에게 자신의 정책을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일방적으로 홍보하려 한데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

넷째, 설득의 능력이다.

새 대통령은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국민의 선호를 충실히 반영하기만 하는 단순한 근시안적인 민주정치인이 돼서는 안되며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국민의 '일반의사' 를 발견해 이를 추구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위대한 설득의 정치가는 포고령과 깜짝쇼에 의존하지 않고도 개혁에 대한 국민의 자발적 동의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섯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신뢰를 받는 지도자는 국민과 대화를 하고 국민을 설득하는데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였다는 사실이 모세의 정치지도력을 알게 하는데 필요했듯이, 경제위기 아래에서 국정을 맡게 된 불운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정치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새 대통령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임혁백〈고려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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