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은 어디 숨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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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도 이전은 국가의 명운과 관계돼 있는 일이다. 한 번 옮기면 되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충분한 공론화와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논쟁은 대통령이 "수도이전 반대는 대통령 퇴진운동"이라며 언론공격으로 나서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더 이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도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경쟁력 강화방안이 과연 수도 이전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대로 50만 정도의 인구분산이 목표라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가 큰 방안을 냉철히 따져보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대학을 비롯한 각급 학교를 우선 옮기거나, 일본처럼 대기업 본사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기업도시 건설을 촉진하는 방안 등을 비교 검토해야 한다. 이 밖에도 다경(多京)제 등 새로운 방안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니 "충분한 검토가 끝났다"고 논의를 막을 일만은 아니다.

아직도 이전 강행에 대한 관계 전문가들의 우려는 심각하다. 8일 열린 세미나에서는 수도 이전이 강행될 경우 2011년부터 경제성장률이 매년 약 1%포인트씩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통일수도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은 오래됐고, "안보 문제에 대한 검토가 없었다"는 국방장관의 최근 국회 답변도 있다. 현지에 투기 바람이 거세다는 보도도 줄을 잇고 있다. 이러니 가장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가장 높은 인구분산 및 균형 발전 효과를 거두는 방안이 과연 없는지 살피는 일은 매우 절실하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과거와 같이 찬반 양쪽에 공론의 장을 열어놓는 것은 물론 책임 있는 언론으로서 건설적인 대안을 계속 모색해 나갈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의 처신은 무기력 무책임하며 비겁하다. 현재 한나라당은 수도 이전 문제에 관한 당론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전 자체엔 입을 닫고 대안도 못 내면서 정부에 대해서만 '졸속'이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게 한나라당이 그동안 강조해온 '일하는 야당'의 모습인가.

한나라당이 눈치 보는 이유는 뻔하다. 반대하자니 충청권의 반발이 걱정되고, 찬성하자니 기존 지지층과 수도권의 이탈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이전 장소까지 정하고, 대통령은 "이전 반대는 정권 퇴진 운동"이라며 밀어붙이는데 한나라당은 먼 산만 바라보면서 비켜서 있으니 과연 책임 있는 야당이라 할 수 있는가.

대통령이 퇴진까지 거론하는 쟁점에 야당이 눈감으면 그 야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한나라당은 속히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여론에 지지를 호소하고 열린우리당 및 청와대와 정책적 경쟁을 벌여야 한다. 신행정수도 관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데 대해서도 '잘못된 일'이라거나 '반성한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법적 재처리를 추진하든 이전에 찬성하든 양단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나라당은 더 이상 논쟁의 변방에서 구경꾼 노릇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