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티스 핸슨감독의 'LA컨피덴셜', 도시 문명 추잡함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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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할리우드를 '꿈의 공장' 이라고 할 때, 그것은 너무나 달콤해 이대로 깨지 말았으면 싶은 꿈이거나 공포 영화처럼 너무나 두려워 차라리 빨리 끝나 버렸으면 싶은 악몽, 둘 중의 하나이기 싶다.

어쨋든 둘 다 험난한 현실과는 가능한 한 멀리멀리 벗어나고 싶다는 도피적인 소망이 발현된 것이리라. 하긴 영화관 바깥에서도 익숙한, 고단한 일상을 또 맞닥트리기위해 '어둠의 궁전' 을 찾는 관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거짓된 꿈을 팔기를 거부하고 커튼을 들춰 현실을 추한 그대로 관객들에게 들이미는 '용기있는' 영화들이 할리우드에서도 오래전부터 만들어져왔다.

이름하여 '필름 누아르' .

'할리우드의 리얼리즘' 이라 할 수 있는 이 장르는 도시 문명과 인간의 욕망이 충돌해서 빚어내는 사랑과 배신, 살인의 3중주를 명암대조가 선명한 화면에 담아왔다.

2차대전의 후유증으로 심하게 앓고있던 40년대와 50년대초가 절정이었다.

가물가물 맥이 끊겼나 싶었던 '정통 필름 누아르' 가 부활했다해서 작년 한해 미국영화비평계에 난리가 났다.

'요람을 흔드는 손' 을 만든 커티스 핸슨 감독의 'LA컨피덴셜' 이 장본인이다.

아카데미상을 휩쓸거라는 예상은 '타이타닉' 이라는 다크 호스를 만나 좀 주춤해졌지만, 미국 각지의 비평가 협회상을 석권한 것만으로도 '품질 보증' 은 확실히 받은 셈이다.

1953년 LA최대의 범죄조직인 미키 코헨에 대한 경찰의 대규모 제거작업이 시작됐다는 신문기사와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융통성없고 출세욕 강한, 순직한 경찰을 아버지로 둔 애드 (가이 피어스) , 우직하지만 현장경험으로 단련된, 어릴 때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를 잃은 버드 (러셀 크로우) , 적당히 자기 잇속을 챙길줄 아는 잭 (케빈 스페이스) 등 뒤틀린 내면을 가진 세 명의 형사가 사건에 개입한다.

매춘업자와 마약거래상, 거기에 기생하는 기자가 가세하면서 영화는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못하도록 긴박하고 복잡하게 풀려나간다.

로맨스와 음모, 배신과 살인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점에서 필름 느와르의 교과서같다.

그러나 소문만큼 '정통 누아르' 의 노선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킴 베이싱어가 '악녀 (팜므 파탈)' 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등에서 그렇지만 무엇보다 액션장면에 비중을 많이 뒀다는 게 눈에 띈다.

90년대 필름 느와르라면 오락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는 계산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사 홍보문처럼 '액션 누아르' 라는 호칭이 적당하겠다.

그래서 '타이타닉' 같은 오락대작과 맞붙어도 별로 밀리지 않지 싶은 작품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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