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빛보다 그림자 컸던 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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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5년은 큰 기대가 큰 실망으로 끝난, 빛보다 그림자가 훨씬 더 긴 기간이었다.

문민정부.신한국건설 등 취임때 반짝했던 구호들은 허무하게 퇴색하고 경제파탄으로 온 국민에게 고통과 좌절을 안겨주고 떠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군사독재를 단절하고 깨끗한 정치를 통해 한국병을 치유하겠다던 5년전 그의 포부와 국정목표는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일절 받지 않았다든지, 선거풍토의 상당한 개선 등은 金대통령의 개인적 의지에 힘입은 바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낙제점으로 의견이 모이는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안목부족과 국가경영능력의 결여가 두드러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본적으로 金대통령은 과거 정권에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세력을 사려깊게 포용하지 못했고, 민주화 외길의 가치관에 입각해 여론에 영합하는 독단.독선.독주의 행태를 보였다.

과거청산적 개혁이 결과적으로는 중산층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고 경제살리기를 뒷전으로 밀어붙였다.

사실 경제에 관한한 그는 이해도 부족했고 노력도 안했다는 말을 들어도 변명하기 어렵게 돼 버렸다.

경상수지.물가.성장률 등 경제지표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고 치적으로 내세웠던 금융실명제마저 경제정의구현보다 국가나 기업의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데 더 큰 작용을 한 것으로 결론났다.

또 국가운영을 자주 깜짝쇼나 정치게임식으로 해온 그의 행태는 빈번한 인사교체와 더불어 대통령이 다시는 답습하지 않아야 할 반면교사의 역할로 남았다.

일관성을 상실한 정책의 부작용은 도처에 예측가능성을 헝클어 기업과 국민은 물론 관료들까지 우왕좌왕하게 한 예가 적지 않았다.

그가 시도한 역사 바로세우기가 후일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의문이다.

역사의 아픔을 처리한 이면에 법리해석의 무리와 선거전략의 의도는 없었던가.

아무튼 金대통령에겐 국가발전세력과 민주화세력을 통합.결속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나름의 엄격한 자기관리와 선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부과된 그 시대적 소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그 역시 과도적 지도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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