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지명 한승헌 변호사…김대중당선자와의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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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한승헌 감사원장내정자의 만남은 金당선자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도전장을 낸 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金당선자가 낙선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됐을때 韓변호사가 담당변호를 맡으면서다.

이 사건은 시일을 끌다 결국 73년 金당선자가 도쿄 (東京)에서 납치돼 오면서 법정에 올랐다.

당시 갓 마흔을 넘긴 韓변호사는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던 때였다.

민주화.인권 존중정신은 변론에 여실히 투영됐고, 박정희 (朴正熙) 정권의 눈밖에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75년 자신의 저서인 "위장시대의 증언" 에 朴정권을 비판한 글 '어떤 조사 (弔辭)' 가 문제가 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런 게 金당선자와의 관계를 더욱 깊게 했다.

金당선자가 정치권의 투사였다면, 韓변호사는 법조계의 의인이었던 셈이다.

이를 계기로 두사람은 격의없이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

두사람 모두 동서고금 (東西古今) 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 한번 만나면 서너시간씩 대화와 토론을 벌이곤 했다고 한다.

金당선자의 한 측근은 "金당선자가 韓변호사보다 10세위지만 두분은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이" 라며 "金당선자가 정치적 어려움과 불운을 겪을 때마다 韓변호사가 앞장서 변론을 자청하곤 했다" 고 회고했다.

'친 (親) DJ계 인사' 로 분류된 韓변호사는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에 연루,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83년 복권되면서 변호사자격을 회복, 더욱 왕성한 활동을 벌인 韓변호사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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