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특사 논의는 분별있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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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특별사면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인수위가 미전향 장기수 (長期囚) 의 특사를 건의했는가 하면 여당이 된 국민회의는 간부회의를 열고 선거사범을 특별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취임을 앞둔 시점이란 점에서 특사 건의는 하나의 관례처럼 보일 수도 있다.

더구나 첫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만큼 각계에서 전보다 훨씬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전향 장기수의 대규모 특사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들중에는 30년 가까이 복역중인 사람도 20여명이나 돼 인도적 차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영삼 (金泳三) 정부 출범 초기에 있었던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李仁模) 노인의 석방.북송이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을 못 준 실패작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지 않은가.

미전향 장기수의 사면문제는 우리나라 형사정책의 방향전환이라 할만큼 중요한 문제다.

그러므로 남북 관계에서의 호혜 (互惠) 등 정책적 고려가 아니라면 먼저 원칙과 기준을 분명히 해놓고 다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선거사범의 특사 건의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다.

국민회의측은 야당 시절 편파.표적수사 등 소위 '야당 탄압' 의 피해자이므로 모두 구제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총선.대선 당시 야당 탄압이 있었다고 보는 국민은 거의 없다.

개혁을 부르짖고 건전한 선거문화 정착을 강조하는 마당에 대부분 금품살포.기부행위.사전선거운동 등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을 사면.복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면이 사법부의 판결 효과를 한순간에 무력화하고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면을 3권분립에 어긋나는 구시대의 통치 유물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학계나 법조계에는 적지 않다.

그러므로 새 정부는 특사 대상을 보다 엄격하고 분별있게 선정해야 한다.

특히 취임과 함께 실시되는 첫 특사는 새 대통령의 통치방향을 제시하는 의미도 지니기 때문에 국내외의 각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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