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선자측 '대기업 구조조정 3∼6개 정리설' 숫자에 연연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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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문제 '페이스 (속도) 조절' 과 '표현 절제' 로 애를 먹고 있다.

완급 (緩急) 조절에 조금만 실패하면 기업계가 화들짝 놀라기 때문이다.

17일에도 그랬다.

金당선자가 국민회의 의원세미나에서 밝힌 '대기업 대폭 정리론' 이 알려지자 가뜩이나 어려운 재계가 요동을 쳤다.

30대 그룹 대부분이 정보라인을 사실상 풀 가동해 특히 당선자가 지칭한 '3~6개 핵심기업' 이 계열사를 말하는 것인지, 업종을 말하는 것인지를 탐문했다.

재계로선 '계열사' 냐 '업종' 이냐에 따라 그룹의 운명과 진로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날 심각한 불안감에 휩싸인 것으로 파악된다.

30대 그룹이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통해 제출한 구조조정안이 당선자의 심기를 거슬렸고, 그에 따른 '경고성'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반응들이 포착됐던 것이다.

재계에선 "아무런 채점기준도 알려주지 않고 주관식 답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나무라는 셈" 이라는 호소가 쏟아졌다.

구조조정안을 만든 기조실은 하루종일 '좌불안석 (坐不安席)' 하며 손에 일을 잡지 못했다.

사태가 이처럼 거칠게 확산되자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와 박지원 (朴智元) 당선자대변인이 18일 일단 해명에 나섰다.

박지원 대변인은 "그같은 발언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발표된 바 있다" 며 "재벌들이 과거처럼 문어발식.선단식 경영을 해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을 것이란 뜻" 이라고 확대해석하지 말 것을 누누이 당부했다.

지방을 방문중인 박태준총재는 기업입장에서 최대 의문점을 풀어줬다.

그는 "기업수 축소가 아니라 업종을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자동차.선박.금융.금속 등 '주력기술' 을 택해야 한다는 의미" 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컨대 조선회사를 주력으로 삼을 경우 선박엔진을 만들어 조선회사에 넘기는 중공업회사는 당연히 살아남는다는 식이다.

엔진을 만드는 회사는 당선자가 말하는 '개' 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20~50개에 달하는 그룹 계열사를 꼭 3~6개만 남기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슷한 업종에 있는 계열사를 대충 덩어리로 묶는 것도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이 모인다.

다시 말해 현재 재계가 하고 있는 것처럼 계열사를 몇개 소그룹으로 나눠놓고 사실상 모두 주력업종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지원 대변인은 "기업수면 어떻고 업종수면 어떠냐" 고 반문한다.

즉 자동차업종이라면 꼭 필요한 부품회사를 통합할 수도 있고, 따로 자회사로 두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朴대변인은 그러나 "통합이 비효율적인 계열사라면 적절한 기회에 중소기업들에 과감히 매각하라는 것이 당선자의 뜻" 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당선자가 밝힌 '3~6개' 에서 '개' 는 '업종을 말하는 의미가 아니라' 고 설명했던 이헌재 (李憲宰) 비대위기획단장은 "어차피 대기업에서 수익을 내는 곳은 그 정도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니냐" 며 구분에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세분화된 주력업종 자체를 분명히 정하고, 그 업종에 속한 계열사도 꼭 필요한 것만 남긴 뒤 중소기업들에 사업을 넘겨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체제를 구축하라는 것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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