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맨유 팬, 당사로 집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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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바르셀로나는 심판 덕에 결승전에 올랐다. 첼시는 승리를 도둑맞았다.”

지난 7일(한국시간) 끝난 ‘유럽 축구전쟁’의 불똥이 한반도로 튀어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첼시와 바르셀로나의 준결승 2차전이 끝난 뒤 성난 첼시 팬들이 바르셀로나 팬 사이트를 공격했다. 이들은 국내 사이트인 ‘바르샤당사(www.culecorea.com)’에 가입한 뒤 욕설과 특정 선수를 비방하는 글로 게시판을 도배했다. 이 사이트는 결국 문제가 된 회원들을 강제 탈퇴시키고 7일 오전부터 신입회원 가입을 막아놓았다.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전쟁’을 벌일 정도로 국내에는 유럽 축구 클럽을 좋아하는 팬이 많다. 이들은 지지하는 클럽 명칭 뒤에 ‘당사(黨舍)’라는 단어를 붙인 온라인 공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28일 새벽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맞붙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온라인 서포터스를 소개한다.

◆“선수나 감독 욕하면 무조건 강퇴”=맨유의 팬 카페 명칭은 ‘맨유당사’이고, 바르셀로나는 팀 애칭을 딴 ‘바르샤당사’다. 회원 대부분이 10~30대 남성으로 학생 또는 직장인들이다. 클럽에 대한 불만이나 욕설을 올리는 회원은 곧바로 강제 탈퇴된다. 지난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박지성을 출전시키지 않은 퍼거슨 감독을 욕한 맨유당사 회원들도 ‘강퇴’당했다.

이들은 주말 경기가 다가오면 게시판에 예상 출전선수와 경기 예측 글을 올린다. 주로 새벽이나 한밤중에 열리는 경기를 TV로 보면서 실시간 대화를 나눈다. 경기가 끝나면 전문가 수준의 분석이 게시판을 메운다.

활동은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진다. ‘실축(실제축구)’과 ‘정모(정기모임)’가 수시로 열린다. 맨유당사의 실축 모임 이름은 ‘맨땅 유나이티드’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축구 카페에서 ‘단관(단체관람)’을 하며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맨유당사와 바르샤당사 운영진은 28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단관 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다. 회원 5만 명을 관리하는 맨유당사 운영자 김경민(24)씨는 “지난해 준결승에서도 맨유가 바르셀로나를 꺾었다. 올해는 박지성 선수가 꼭 뛰고, 맨유가 2연패를 달성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바르샤당사의 회원은 2800여 명이다. 맨유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오랜 기간 활동한 30대 이상이 많은 게 특징이다. 바르샤당사 운영자 이현종(28)씨는 “지난해 준결승에서 박지성 선수의 활약이 대단했다. 이번 결승에서도 박지성 선수가 뛰어난 활약을 하되 경기는 바르샤가 이겼으면 좋겠다”며 “결승전 단관은 맨유당사 측에서 함께하자고 하면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이들이 마음 편하게 좋아하는 팀들을 응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사이버 훌리건들의 온라인 테러에 대응해야 하고, K-리그 팬들로부터는 ‘유럽축구 사대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특히 맨유당사는 2007년 7월 맨유와 FC 서울의 친선경기 때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내건 현수막이 문제가 됐다. 열성적인 응원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올드 트래퍼드(맨유의 홈 구장) 분위기로 만들고 싶어 ‘여기는 제2의 올드 트래포드입니다(HERE’s Another OLD TRAFFORD)’라고 쓴 게 K-리그 팬들의 눈에 거슬린 것이다. 맨유당사 측은 “문구가 K-리그 팬들을 자극한 건 인정한다. 그러나 맨유를 응원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경민씨는 “맨유는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팀이고, 그게 좋아서 응원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K-리그 팬들과 서로 존중하면서 우리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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