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정책,산으로 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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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에서 확정된 정부조직법개정안을 보고 한숨을 쉬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경제정책이 정부 각 부처로 갈가리 흩어져서야 어디 원활한 경제시책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 때문이다.

특별 임시기구까지 구성해 만든 제도개선책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개악 (改惡) 이 됐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분산된 경제시책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산기능이다.

재정경제원에서 분리된 예산기능은 국회심의 과정에서 청와대 소속의 기획예산위와 재경원 산하의 예산청으로 분산됐다.

예산권의 청와대 귀속이 위헌 (違憲) 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런 법적 논쟁은 추후로 밀더라도 일단 예산을 기획하고 통합.조정하는 업무가 양분되면 나라의 살림계획을 짜는 작업이 한층 더 혼란스러워질 개연성에 주의해야 한다.

정부 각 부서는 청와대의 눈치도 보고 재경원의 주문도 받아야 하는 정부내 규제의 증가로 일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또 대외통상업무가 외무부로 넘어갔다고 일사불란한 대외교섭이 가능할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어차피 전문지식을 요하는 대외통상업무는 통상산업 관련 각 부처의 몫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기능의 분산도 제도적 후퇴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경제정책 수립기능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도 정부 각 부처의 이견 (異見) 을 조정하는 기능이 불분명해진 것은 더 큰 문제다.

경제부처 수장 (首長) 기능이 사라진 재경원 대신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국정의 집중화와 효율화를 기할 기능이 정부 어디엔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할 만한 기구가 지금 너무 많아 걱정이다.

쉽게 꼽아 봐도 청와대의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경제특보.기획예산위, 국무총리실의 국무조정실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것은 일할 사람보다 간섭할 사람만 많아진 옥상옥 (屋上屋) 의 결과와 다름없다.

일은 갈가리 흩어지고, 통합조정할 사람은 없지만 막상 하려면 너무 많고, 제도적 규제는 더 늘어난 형국이 돼버렸으니 새 정부의 효율적 경제정책 수행이 걱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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