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망준 野大국회 첫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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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소야대 상황이 된 후 처음으로 열린 임시국회는 국제통화기금 (IMF) 통제체제하에서 우리 정치나 국회가 위기극복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었다.

국회가 IMF와 약속한 고용조정, 기업의 구조조정 및 투명성 제고와 관련된 법안을 합의로 처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법안을 잡음 없이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외부와의 약속이고, 위기상황에 대한 국민적 압력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다른 안건의 처리내용을 보면 실망뿐이다.

여야는 추경 (追更) 예산안과 인사청문회법안 처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더니 둘 다 다음 국회로 미루는 정치적 흥정을 했다.

IMF체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추경이 빨리 확정돼야 하는데 여당은 인사청문회를 피하기 위해 야당이 무리하게 요구한 추경예산 연기를 받아들였다.

정부조직법안 역시 정치적 흥정으로 엉망이 됐다.

기획예산처가 어디에 소속돼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헌법.기능상의 문제 등 여러 점을 고려해 청와대에 두든, 내각에 두든 원칙적인 결정을 해야 할 사안이었다.

이를 정치흥정으로 반쪽은 청와대로, 반쪽은 재경부로 나눠 놓았다.

이런 결과가 된 것은 여야구조.여당내부의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야대 (野大)' 의 힘 과시에 집착했고 여당은 이러한 야당에 대한 협상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거기엔 여당 내부의 간단치 않은 사정도 일조했다. 두 당을 합쳐도 과반수가 안되는 마당에 정치적 이해에 따라 협조의 깊이가 다르다.

한 당은 인사청문회를 은근히 바라고, 다른 당은 예산권이 내각에 오기를 바라는 식이다.

이런 식의 패턴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정치와 국회는 불안정과 갈등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신속한 국민적 합의의 도출이 필수적이다.

야당은 야대에 집착해 무조건 뒷다리잡기 식의 행태를 버려야 하고 여당도 IMF를 빙자해 무슨 건이나 밀어붙이려 할 것이 아니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선별해 개혁하고 입법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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