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4자회담과 6자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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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밀사나 특사가 아니라 공식채널을 통해 남북대화를 추진한다든지,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회의체의 모색을 위해 6자회의를 추진한다든지, 교류협력을 다각도로 촉진시키기 위해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고령 이산가족의 방북요건을 완화하는 등 갖가지 정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통일외교분야를 담당하는 각 부처가 중구난방으로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잡음과 혼선이 발생한 점을 고려해 이들 부처간의 기능분업을 명확히 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만 집행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더욱이 집권 경험이 없는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 정책집행의 난맥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 없다.

문민정부의 경우가 바로 가까이서 발견할 수 있는 반면교사다.

이런 이유에서 정책집행과 관련해 몇 가지 첨언하고자 한다.

우선 새 정부의 평화공존원칙 제시는 바람직하다고 평가된다.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붕괴와 이에 따른 흡수통일론이 남발돼 왔다.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로 전락해 버린 지금은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흡수할 능력도 없게 됐지만 말이다.

지금처럼 한국의 경제위기가 심각한 상태에서 북한이 망한다면 그것은 자칫 한국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공존은 불가피하며 바람직한 정책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민정부도 공식적으로는 이러한 정책목표를 견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실제로는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강경책 구사에 인색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지금은 새 정부가 평화공존을 언명하고 있지만 핵개발과 같은 북한의 또 다른 도발에 부닥쳤을 때 과연 이를 여하히 견지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둘째, 교류협력의 경우 한국이 처해 있는 경제위기를 고려해 추진돼야 하겠다.

어찌 됐든 이제는 과거처럼 한국이 경협카드를 북한을 유인하는 '당근' 으로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제는 남북한이 대등한 입장에서 진정으로 서로에게 유용한 경제협력방안을 찾아보고, 상보성 (相補性) 의 원리를 관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가 제시한 관광사업 협력방안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업 또한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 긴장상태가 완화돼야 한다.

과거에도 관광협력은 줄기차게 논의됐지만 실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그럴 듯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이같은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급하다.

남북한의 신뢰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또한 말로는 쉽지만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또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셋째, 최근에 언급되고 있는 6자회의의 경우 현재 제2라운드를 맞이하는 4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서둘러 제기된 것이 아닌가 보인다.

러시아나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고, 궁극적으로 불안정한 동북아지역의 안보상황을 안정화한다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두 회담을 어떻게 연계하겠다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6자회의를 서둘러 가시화하려고 하기보다 하나의 전략적인 목표로 설정해 추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는 한국 민주화의 완성을 상징하는 정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가 새 정부 정책 추진에 지나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원인이 돼서는 안된다.

달리 말해 과거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한 구호적이고 홍보적인 정책제시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책의 목표와 전략을 세우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긴호흡을 가다듬는 자세가 필요하며, 세부적인 정책과제들은 융통성있게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책집행체계와 방식에 더 많은 사고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재규<경남대 총장.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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