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다시 찾아온 '춘향'…KBS·국립창극단, 현대적 변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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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판소리 '춘향가' 는 창극은 물론 영화.연극.뮤지컬.오페라, 심지어 북한의 민족가극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다.

'춘향가' 의 현대적 변용 (變容) 은 한국의 예술가들이라면 도전해 봄직한 과제인 셈이다.

지난 12~13일 KBS교향악단 (지휘 鄭明勳) 이 위촉.초연한 이영조 (李永朝) 의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와 국립창극단이 14일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 완판장막창극 '춘향전' 으로 '춘향가' 의 현대화 작업의 성과가 더 풍성하게 됐다. 휴식시간 45분을 포함해 6시간 걸린 창극 '춘향전' 은 2시간짜리 기존 창극과는 달리 경치묘사와 정황설명을 충분히 살린 사설 (가사) 과 더늠 (가락) 으로 판소리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게 했고 합창과 군무 (群舞) , 속도감있는 무대전환으로 대극장 특유의 스케일과 박진감을 더해 주었다.

또 82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처음 선보였던 완판창극 '춘향전' 과는 달리 여러 판본과 소리제를 대조해 대목마다 가장 돋보이는 더늠을 골라 엮었다.

또 지나치게 과장된 대편성 관현악 대신 이생강.김영재.윤윤석.김무길 등 명인들이 연주하는 몇개의 선율 악기와 장고.북만으로 구성된 조촐한 단잡이 편성이 더욱 효과적이었다.

14일 공연에서 홍팀으로 출연한 유수정 (춘향) 과 왕기석 (이도령) 의 무르익은 소리에다 김영자 (월매) 의 안정감있는 연기, 이영태 (방자) 와 전은영 (향단) 콤비의 해학으로 무대는 살아 움직였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이별가' '갈까부다' '쑥대머리' 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사랑가' '농부가' '태평성세' 에선 우리 장단의 흥겨움을 만끽했다.

'단오놀이' '장원급제' 에서 등장하는 무용단의 화려한 춤도 볼거리. 국내 공연사상 가장 긴 중간 휴식시간 동안 로비에서 열린 막걸리 무료시음회와 '춘향전 전시회' 도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눈대목과 볼거리가 많은 2부만 보러 온 관객들도 꽤 많았고 1부가 끝난 후 다른 날 2부를 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오랜만에 중장년층 관객들이 판소리에다 무대.연기.춤이 곁들여진 창극 삼매경을 즐겼다.

임진택 연출, 김명곤 연출, 성창순 작창의 완판창극 '춘향전' 은 작품 준비과정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전통에 충실한 정공법 (正攻法) 의 성공으로 국내 공연사상 커다란 획을 그은 것. 반면 이영조의 '사랑가' 는 서양식 오케스트라와 명창의 협연이라는 점에서 일견 판소리의 세계화 작업처럼 여겨지지만 결과적으로는 어설픈 편곡 수준에 그쳤고 국악관현악단 반주의 판소리에 비해 연주효과가 반감되어 KBS교향악단이 판소리까지 연주해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낳았다.

예술의전당 집계에 따르면 이날 2천4백22명 관객중 유료관객은 1천3백2명. 나머지 1천1백20명은 KBS교향악단이 관례를 깨고 남발한 초대권 소지자들이어서 뒤늦은 입장에다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피날레로 연주된 안익태의 '한국환상곡' 에서는 지휘자가 관객들을 일으켜 세워 '애국가' 를 따라 부르도록 유도해 일부 관객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이영조의 '사랑가' 는 3월1일 아시아필 공연에서 다시 연주되고 완판창극 '춘향전' 공연은 오는 26일까지 계속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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