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 밀리고, 조직 개편에 휘둘린 ‘개방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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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스 분석 이달 초 난 통일부 인사에서 통일교육원장에 홍재형 남북회담본부장이 임명됐다. 1급 상당의 ‘개방형 직위’(이하 개방직)다. 옷을 벗은 이는 박상봉 독일통일연구원장이다. 원장에 임명된 지 7개월 만이다. 인사 배경에 대해 통일부는 “몸이 불편해 장기간 휴가를 내다가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다”(이종주 홍보담당관)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서란 시각이 많다. 통일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통일부가 대폭 축소된 데다 청와대 통일비서관에도 통일부 외부인사가 임명돼 인사적체가 심했다”며 “결국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아 물러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 도입된 개방직은 올해로 10년째다. 초대 중앙인사위원장(현재 행정안전부에 흡수)이었던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의 야심작이었다. 김 교수는 당시 개방직 도입 배경으로 “공직사회 안팎이 경쟁해 효율을 높이고 정실인사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은 어떨까.

◆“무늬만 개방직”=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전체 개방직 190개 가운데 132명의 자리가 채워졌다. 민간인 출신은 67명(50.7%)으로 내부 임용된 65명(49.3%)보다 다소 많다. 그러나 민간인 임용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7년 56.1%(110명)에서 지난해 52.9%(72명), 올해 5명이 더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내부 인사를 채용한 비율은 43.9%(85명)→47.1%(64명)→49.3%(65명)로 증가 추세다. 특히 ‘대국대과제(大局大課制)’로 3급 이상 고위 공무원단 숫자가 줄면서 가장 먼저 없어진 자리도 개방직이다.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내부인사가 차지하고 있던 개방직은 21명이 줄었지만 외부인사 몫이었던 곳은 2배가 넘는 43명이 줄었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재 임용이 진행 중인 경우가 누락됐기 때문에 외부인사 자리가 많이 없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파리 목숨’이라는 민간 출신 개방직들의 자조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들러리 공모란 의혹도 있다. 지난해 한 중앙부처 1급에 지원했던 A교수의 경우가 그랬다. 평가 점수가 좋았던 그는 최종 후보에 들어 역량평가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평가 전날 ‘지원했던 사실 자체를 취소해 달라’는 해당 부처의 연락을 받았다”며 “상부에서 미리 내정자를 정해 놓고 공모를 진행하는 무늬만 개방직”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이틀에 걸친 면접 평가 등에서 ‘부적절하다’는 내부 결론이 있어 철회한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A교수가 지원한 자리에는 현직에 있던 내부 인사가 임명됐다.

◆“과장급 이하로 뽑고, 경쟁시켜야”=민간 출신 개방직은 ‘관료제의 벽’을 한계로 꼽는다. 관료들이 구축한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 전직 개방직은 “연임이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기존 틀에 갇혀 정책을 소신껏 펼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간 출신 한 현직 국장은 “비교적 젊은 4급 이하의 직위에 개방직을 확대해야 한다”며 “기존 관료와 똑같이 경쟁을 붙이되 승진 기회를 줘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190개 개방직 가운데 과장급은 26개(13.7%)뿐이다. 개방직을 설계한 김광웅 교수는 ‘롤 모델의 확대’를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의·탈법은 발생하게 마련”이라면서 “한 명의 장관이라도 개방직 능력을 충분히 활용해 성과를 인정받으면 곧 주위로 퍼져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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