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로 7000회 맞는 MBC FM ‘음악캠프’ DJ 배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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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란 이름은 동사 ‘듣다’의 목적어 같다. ‘라디오를 듣다’는 말만큼이나 ‘배철수를 듣다’란 말도 자연스럽다. 십 수년간 그의 목소리를 듣다보니 그렇게 여겨진다. 툭툭 내던지는듯한 말투는 때론 불친절해 보이지만, 그 중독성은 드세다. 1990년대를 추억하는 이들이라면, 그가 전해주던 ‘팝의 세계’에서 허우적댔던 기억 몇 토막쯤은 꺼낼 수 있다.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방송 7000회를 맞은 라디오 DJ 배철수씨는 19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지각하거나 방송을 펑크낸 일이 없다. 십수년 째 정해진 대본 없이 자유롭게 진행해 온 그는 “청취자와 일대일로 맺어지는 친밀한 관계가 라디오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러므로 이런 표현도 가능하겠다. 배철수란 이름은 90년대 이후 한국 라디오 방송사의 무게감과 맞먹는다고. ‘말의 상찬’이라고 타박하진 마시라. 라디오 방송을, 그것도 한 프로그램만 20년 가까이 지켜온 DJ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니까.

◆7000회 맞는 ‘음악 캠프’=17일이면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91.9MHz, 매일 오후 6시)’가 방송 7000회를 맞는다. 첫 방송이 1990년 3월이었으므로 꼬박 19년을 채웠다. 고집스레 ‘라디오 기둥’을 붙들고 있는 그를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올해로 56세. 하얗게 샌 그의 콧수염에서 포개진 세월이 읽혔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내 스타일대로 밀고 가자고 다짐했어요. 한번 마음대로 해보고 그만두자는 생각이었죠.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저만의 스타일을 추구했는데 그게 통했나 봐요.”

‘음악캠프’가 첫 방송은 아니었다. 1980년에 MBC 라디오 ‘젊음의 찬가’란 프로그램을 맡았다. 소속 그룹 ‘송골매’가 데뷔 앨범을 냈던 해였다. 그러나 초보 DJ였던 그는 6개월 만에 물러났다. “지명도도 낮았고 자신감도 없었어요.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다 보니 방송도 엉망이었죠. 그만두고서도 미련이 많이 남았어요.“

‘음악캠프’는 그로부터 꼭 10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송골매 활동을 접고 아예 전업 라디오 DJ로 나섰다. 방송 시작 1년3개월 만에 결혼도 했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박혜영 PD가 부인이다. “음악 활동에 지쳤을 때 라디오 진행을 다시 시작하게 됐죠. 음악을 소개하는 일도 중요한 거잖아요. 10년 만에 방송을 해보니 아마추어 밴드에서 음악하던 것처럼 너무 재밌더라고요. 담당 PD였던 와이프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요. 헤헤.”

그는 방송에서 줄곧 ‘팝 음악’만 고집해 왔다. 그간 딥 퍼플, 메탈리카,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정상급 팝 스타 200여 팀이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정도로 명성도 쌓였다. 그런데도 팝 음악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저는 의무적으로라도 팝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 대중음악도 더 풍부해지죠. 팝 음악은 어느 특정 지역의 산물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잖아요.”

◆“라디오는 친구 같은 존재”=쌓인 세월만큼 방송 환경도 달라졌다. LP가 물러난 자리를 CD가 대신했고, 이젠 디지털 파일이 라디오를 장악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CD를 튼다. “디지털 음원이 편하긴 해도 제가 듣기엔 CD 음질이 훨씬 좋아요. 앨범 속지를 꺼내서 사진도 보고 가사도 읽으면서 느끼는 감성을 잃기도 싫고요.”

디지털이 세상을 삼켜내는 시대에 CD 앨범을 뒤적이는 수상쩍은 모습이라니. 그런데 이분, 듣기에 따라선 더 촌스러운 말을 늘어놓는다. 디지털 세상에 띄우는 ‘라디오 예찬론’이다. “라디오가 인간 감성에 가장 맞는 매체 같아요. TV는 아무래도 허상이 많거든요. 라디오는 친구같죠. 듣는 사람 입장에선 일대일로 교감하는 거니까요. 라디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체여서 인간의 감성을 더 풍부하게 하죠.”

요란한 영상 언어보단 잔잔한 소리 언어가 인간에 가깝다는 게 그의 생각이란다. 그러니 알겠다. 배철수란 이름은 명사 ‘라디오’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정강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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