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무분규’ 비결은 가족 같은 노사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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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고속에선 이상한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임원과 사원들이 서로 “형님”“아우”라고 부른다. 위계 질서보다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회사 임원과 노조 간부 간의 반목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마주치면 웃으며 안부를 묻는다. 외환위기 때도 이 회사에선 한 명도 퇴사한 사람이 없다. “지금 내보내면 그 가족들은 어떻게 사나”라는 회사 측의 배려 때문이다. 이재덕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가정”이라고 말했다. 금호고속이 63년간 무분규를 이어올 수 있는 비결은 이처럼 가족같은 신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운수 승무사원(운전기사를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입니다. 그런데도 회사 일이라면 무조건 하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노조의 자세 때문인지 노조 간부를 지낸 사람이 퇴직을 하면 다른 회사에서 서로 스카웃하려 한다. 금호고속의 노사문화를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것이다. 이원태 사장을 서울 강남터미널 내 본사에서 만났다.

Q. 1년,2년도 아니고 63년 간 무분규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임원들이 잘 한 건 거의 없다. 노조원들이 회사를 믿고 따라준 덕분이다. 외환위기 때는 임금을 먼저 반납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 사람들이 먼저 경영을 걱정하고, 챙긴다.”

Q. 노조와 자주 대화하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 않으면 그럴 수가 없는데.

“매일 아침 6시 임원·팀장들과 ‘굿모닝 미팅’이라는 회의를 한다. 그 자리에 노조위원장이 꼭 참석한다. 전날 실적, 그날 계획과 같은 회사의 경영사정을 매일 공개한다. 사고가 났으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승무사원의 고충은 없는지 등을 처리한다. 24시간 안에 모든 민원을 해결하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노조가 경영에 참여는 안해도 이해도는 상당히 높다.”

Q. 운수산업은 생산성이 아주 낮은 업종이다. 노사분규의 원인이라고 꼽히는 근무환경도 그만큼 열악할 수 밖에 없을 텐데.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참 미안했다. 실제로 열악했다. 명절이면 남들은 고향에 가는데 우리 승무사원들은 밤잠을 줄인다. 그런데 ‘고생한다’고 해도 ‘힘들다’는 사람이 없더라. ‘제 일인데요’라고 하더라.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서 임단협 협상을 하면 노조가 얘기하기 전에 회사가 먼저 챙겨준다. 업계 최고의 임금을 받는 것도 이런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Q. 금호고속이 임단협 교섭을 한다는 얘기는 지금 처음 듣는다. 조용하게 진행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협상을 하면 알려지게 마련인데.

“교섭은 시늉일 뿐이다. 서로가 잘 아는데 무슨 얘기가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사원들은 업계 최고의 생산성을 가지려 노력한다. 그것 이상 중요한 교섭은 없다.”

Q. 코오롱고속과 속리산고속을 인수했다. 그 쪽 노조와 갈등은 없었나.

“오히려 금호고속에 합병된 걸 반겼다. 코오롱 노조는 곧바로 우리 노조와 통합했다. 속리산 노조는 인수될 때 시위를 했다. 그 때 뿐이었다. 올해 3월 노조가 자진 해산했다. 속리산고속의 직원들은 임금은 낮았지만 정년은 우리보다 길었다.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희생하고 회사를 믿어주더라.”

Q. 노조원이 2000명이 넘는데 전임자는 6명(서울과 광주 각 3명) 뿐이다. 전임자 처우나 인원을 두고 갈등은 없나.

“(웃으며)오히려 올해 한 명을 줄여서 6명이다. 코오롱고속과 속리산고속을 인수했지만 노조가 전임자를 줄이더라. 물론 회사가 제안을 했는데 노조가 받아들인 것이다. ‘인원이 적어서 조합원들 애경사 쫓아다니기도 벅차다’며 투정같은 불만을 얘기하더라. 참 고마웠다.”

인터뷰 말미에 이 사장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노노갈등이라고 했다. “노노갈등이 생기면 가족적인 분위기를 해칠까봐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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