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갯바위 박근혜를 잡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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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이명박(MB)을 선택하고 박근혜를 뿌리쳤다. 그는 측근들에게 “여자가 무슨”이라고 했다고 한다. 2006년 6월 박근혜가 당대표를 그만두자 의원들은 호칭을 고민했다. ‘박 전 대표’는 너무 길고 ‘박근혜’는 너무 거칠었다. 그래서 일부 인사는 ‘P양’을 개발해 냈다. 요즘엔 ‘박 대표’가 가장 많이 쓰인다. 그러나 2~3명의 사석에선 ‘그 가시나’ 또는 ‘그 아줌마’라는 표현도 나온다. 그냥 편한 자리에서 부르는 것이니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가’, P양 그리고 가시나·아줌마에는 성별(性別)의 의식이 숨어있다. 알게 모르게 박근혜에게서 먼저 여성을 보는 것이다. 박근혜를 전망하거나 박근혜와 거래할 때 이런 접근법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는 여자보다 먼저 인간이며 인간 중에서도 특별한 인간이다. 청와대에서 왕가(王家)의 교육을 받았고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를 지냈다. 22살의 처녀 퍼스트레이디는 실수도 많이 했다. 구국여성봉사단이나 최태민과 관련된 얘기가 그런 것들이다. 그래도 청와대는 권력의 소중한 실습장이었다. 박근혜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생생히 체험했다. 국가와 국가가 돌아가는 프로토콜(protocol-격식·의전)도 지켜봤다. 어떤 인간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경험이다.

박근혜는 인생의 곡절로도 특별한 인간이다. 어머니는 친북 테러리스트에게, 아버지는 심복 정보부장에게 살해됐다. 자신은 성격이상자에게 커터(cutter) 테러를 당했다. 청와대에서 나와서는 인간 군상의 배신을 많이 겪었다. 박근혜는 연애·결혼·육아·내조 같은 잔잔한 행복보다는 비극의 파노라마에서 자랐다. 박근혜는 그 속에서 나름의 생존법과 권력 의지를 키웠을 것이다. 권력과 인간사의 풍파에 침식된 갯바위, 그게 박근혜다. 그런 인간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무엇일까. 안가(安家) 비밀만찬 같은 테크닉인가, 아니면 생일 케이크 같은 제스처인가. 그도 아니면 김무성 추대 같은 정치공학인가.

아니다. 테크닉도, 제스처도, 정치공학도 아니고 열쇠는 진정성이다. 개인과 개인도 그렇지만 권력과 권력도 마찬가지다. YS는 김대중(DJ)을 천하의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DJ의 심복 박지원은 “거짓말은 YS가 더 많이 했다”고 반박한다. 양인은 민주화 투쟁의 간난(艱難)을 같이 했고, 번갈아 대통령을 했으며, 지금은 다툴 먹잇감도 없다. 그런데도 상극(相剋)인 건 평생 상대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갯바위 박근혜의 마음을 돌리려면 MB는 사과의 진정성과 조치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먼저 국정의 동반자와 공정한 공천이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걸 사과하는 것이다. 그러곤 집권세력의 최고 권력자로서 당 운영이 공정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MB는 마음속으론 다를 수 있다. 차기 권력으로 이재오를 밀거나 아니면 정몽준·홍준표·오세훈·김문수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를 염두에 두든 겉으론 모든 걸 공정하게 해야 한다. “룰이 공정하게 지켜지도록 할 터이니 누구든 마음껏 뛰어보시라”고 해야 한다.

지난해 공천 학살을 당하면서 박근혜의 마음속엔 불신이 크게 자랐을 것이다. 앞으로 당권경쟁도 하고 총선공천도 해야 하며 무엇보다 대선후보 경선을 해야 하는데 이대로 가다간 공정한 게임이 불가능할 거란 불신이 있을 것이다. MB는 바로 이 부분을 해소해 줘야 한다. 감투를 나누는 건 다음 문제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당은 두 동강 날 수도 있다. 성 밖에는 노(老)검객 이회창이 버티고 있다. 틀만 공정해지면 박근혜는 보수정권을 도울 것이다. 진정성이라면 MB도 내세울 기록이 있질 않는가. 정주영의 신임을 얻고 청계천 상인들을 녹인 건 관계의 공학(工學)이었나 아니면 진정성이었나.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