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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은 삶 그 자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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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신격호 회장은 1940년대 무일푼으로 일본에 건너가 반세기 만에 40조 원의 그룹을 세웠다. 아흔을 앞둔 지금도 ‘청년 신격호’가 가졌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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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회장은 올해 한국 나이로 88세다. 국내 상장기업 대표이사 중 최고령 CEO다. 아흔을 앞둔 신 회장은 지금도 한 달 간격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셔틀 경영을 한다.

마침내 영그는 ‘신격호의 꿈’

홀수 달엔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 롯데의 30여 개 계열사의 경영 현황을 보고 받는다. 업무 보고는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하루에 1~2개 회사씩 차례로 진행되며 토요일도 예외가 아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월별 실적부터 마케팅 전략까지 꼼꼼하게 보고 받는다”며 “과거 각종 수치들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질문을 쏟아내기 때문에 계열사 대표들이 당황하기 일쑤”라고 귀띔했다.

올 초 롯데제과 임원들이 신 회장에게 신년 업무 보고를 할 때다. 당시 롯데제과는 우유 맛이 나는 사탕 ‘밀크박스’를 신 회장에게 시식용으로 내놓았다. 밀크박스는 이미 초도 물량 생산을 모두 끝내고 출시를 기다리고 있던 신제품이었다.

신 회장은 캔디를 맛본 후 “맛이 부드럽지 못하다”며 재개발을 지시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밀크박스는 회장님 지시대로 보완을 거쳐 출시됐고, 지금은 소비자들에게 부드러운 맛으로 어필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의 ‘깐깐한 입맛’은 요즘 잠실에 설립할 ‘제2 롯데월드’에 집중해 있다.

신 회장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 34층에 있는 집무실에 아예 제2 롯데월드 모형을 들여놓았다. 계열사 업무 보고에서도 제2 롯데월드에 대한 현황 보고가 최우선일 정도. 제2 롯데월드 건립에 대한 신 회장의 의지는 롯데그룹이 94년 5월 서울시에 송파구 비행안전구역 바깥에 초고층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지 질의하면서 알려졌다.

이때부터 항공기 이·착륙과 인근 지역의 교통난 등에 대한 논란으로 번번히 거절당했다. 하지만 신 회장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신 회장은 5년 전 일본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남은 인생의 꿈이 있다면 한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제2 롯데월드를 짓는 것”이라며 “프랑스 에펠탑을 본뜬 세계 최고층 건물을 지어 전 세계 관광객들을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15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제2 롯데월드 사업은 최근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과 맞물리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올 들어 행정협의조정위원회는 본회의에서 제2 롯데월드 사업안을 통과시켰다. 롯데는 2014년까지 약 2조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제2 롯데월드를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롯데물산은 예상되는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650억 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서울공항 비행안전에 대한 조치 역시 수백억 원대의 경제적 비용이 발생하지만 장기간 준비해온 만큼 필요한 재원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다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신 회장의 관광업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관광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70년대에 호텔 롯데를 독자적인 힘으로 지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도 세웠다. 95년 관광의 날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제조업이 아닌 관광업에서 이 훈장을 받은 인물은 신 회장이 처음이다. 신 회장은 평소에도 지인을 만나면 “제조업만 좋고 호텔이나 음식점을 하면 안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외화 가득률이 90%가 넘는 관광업이야말로 농사 짓는 것이나 수출하는 것에 못지않게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기업 차입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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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에 들어설 제2 롯데월드 조감도.
신 회장은 22년 10월 4일 경상남도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 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청년 신격호는 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 배달 등을 하며 문학도의 꿈을 가졌다.

일본 와세다대를 다닌 그는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커팅 오일 생산 공장을 세우며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폭격으로 공장은 전소됐지만 허물어진 군수 공장에서 다시 비누를 만들며 재기했다.

그의 사업적인 재능이 빛을 발한 것은 이때부터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껌이 인기를 끌자 그는 곧바로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만든 풍선껌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이렇게 롯데가 설립됐다.

회사 이름은 문학에 심취했던 그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신 회장은 초기 일본 시장에서 타고난 마케팅 감각을 보였다.

그는 당시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넣고 당첨된 사람에게 1000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았다. 그 결과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줄을 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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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회장이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데는 남다른 성실함과 신뢰감이 바탕이 됐다. 창업 초기 신 회장의 성실성 하나만을 믿고 5만 엔을 출자한 일본인 투자자는 공장을 가동해보지도 못한 채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어도 신 회장을 끝까지 믿었다고 한다. 당시 직장인 평균 월급이 80~100엔에 불과했다.

신 회장은 그 투자자의 빚을 갚는 데 전력을 다해 1년 반 만에 모두 갚았고 감사의 표시로 집 한 채도 선물했다. 97년 3월 열린 부산롯데월드 개관식 때는 일본 전직 총리 4명이 한국에 들어와 테이프 커팅을 함께 했다. 일본 현지에서도 흔치 않는 일로 신 회장의 교유의 폭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67년 한겴?국교가 정상화 되자 신 회장은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모국 투자를 시작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때부터 일본에서 번 돈을 한국에 투자했지만 한국에서 번 돈을 일본으로 가져간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진출하면서 처음엔 식품회사가 아닌 중화학회사를 만들고 싶어 했다.

일본의 공업화를 보면서 장래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신 회장은 석유화학 사업을 검토한 후 정부에 제시했지만 LG그룹이 사업자로 결정되는 바람에 단념해야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유로 연산 100만 톤 규모의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지만 이 역시 한국 정부가 뒤늦게 “제철업은 국가에서 하기로 했다”고 알려와 포기했다.

결국 성사된 것은 호텔업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호텔업은 이익을 내기 어렵지만 한국에 일류 호텔이 없어 장래성이 있다고 봤다. 전혀 모르던 호텔업을 위해 세계 각국의 일류 호텔을 다녀보고 공부했고 일본 데이코쿠(帝國) 호텔을 모델로 삼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신 회장이 평생 지켜온 세 가지 경영 원칙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이해가 가지 않는 사업엔 절대로 손을 대지 않고, 이해가 되는 사업을 시작할 때는 철저히 조사하고 준비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업에 실패해도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는 범위에서 자금을 차입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롯데그룹의 계열사 중 비상장사가 많은 것도 “실패할 경우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는 그의 신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부채 비율은 40% 안팎으로 국내 10대 그룹 중 가장 낮다. 그가 평소 임원들에게 밝힌 차입금에 대한 지론은 확고하다. “한국 기업인은 일본 기업인에 비해 과감하지만 무모하게 보일 때가 있다. 몸에서 열이 나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기업에 있어서 차입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 위주로 경영하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고객이든 협력업체든, 적어도 롯데와 거래하면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

상권은 창조하는 것

신 회장의 집무실엔 ‘거화취실(去華就實)’이라는 글이 담긴 액자가 걸려 있다.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도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탄다. 혼자서 불쑥 서울의 롯데호텔에 나타나면 직원들은 그때서야 그가 온 걸 알 정도다.

신 회장은 혼자 다닐 뿐만 아니라 불시에 현장에 나타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장 순시 도중 이를 알아본 직원이 다가가면 “가서 자네 일이나 보게”라고 말한다. 미도파 백화점 인수를 확정하기도 전에 지금의 노원점을 서너 차례 방문하기도 했고, 경쟁 업체인 이마트와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등을 둘러보는 모습이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엔 혼자서 롯데마트 월드점을 방문해 매장 상태와 품질, 가격 등을 점검해 눈길을 끌었다. 신 회장의 현장 경영은 완벽한 서비스를 추구하는 호텔업에서 빛을 발한다. 과거 롯데호텔 서울이 준공되고 처음 둘러보는 자리에서다. 신 회장은 뜬금없이 담당 직원을 불러 복도의 천장을 깨라고 지시했다.

이제 막 새로 지은 건물을 부수라고 한 것. 그는 뚫린 천장에 직접 랜턴을 비춰 보면서 복도와 객실이 완전히 분리돼 있는지를 살펴봤다. 신 회장의 현장 방문은 시간도 가리지 않는다. 야간에 복도나 매장 등을 둘러보는데 복도에 약간의 물건이라도 적치돼 있으면 바로 불호령을 내린다.

만일의 경우 대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롯데호텔 본점의 리뉴얼 공사가 한창이던 2001년 11월 새벽 신 회장은 공사 현장에 예고 없이 나타났다.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야간 작업을 하고 있던 인부들에게 화재 예방과 안전사고 방지를 당부했다. 끊임없는 현장 방문과 조사는 경영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잠실 롯데월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을 때다. 백화점부터 호텔 1번가, 롯데마트, 테마파크를 아우르는 거대 복합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신 회장은 직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당시 간부들은 가타부타 자신 있게 대답을 못했다.

간부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자 신 회장은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문을 열고 1년 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의 예상대로 잠실 사거리는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롯데쇼핑의 이철우 사장이 언론에 밝힌 일화도 이를 뒷받침한다. 롯데백화점 잠실점 오픈을 앞두고 있을 당시 담당 직원들은 신세계나 미도파 매장의 세 배 크기로 넓은 매장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고 있었다. 직원들의 우려가 전해지자 신 회장은 뜬금없이 “평창면옥에서 답을 찾아라”고 주문했다.

평창면옥은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한식당. 음식이 너무 맛있어 밥 한 끼 먹기 위해 먼 거리에서 차를 타고 올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다. 신 회장은 임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창면옥이 가격이 비싼데도 사람들이 자가용까지 타고 와서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지.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야. 고객이 원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매장을 어떻게 채우느냐를 고민할 필요가 있나. 고객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매장은 저절로 채워지는 거지.”

제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신 회장은 평소 임원들에게 “기업 경영은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하나의 제품이 제대로 평가 받아 압도적으로 시장을 지배할 만큼 성장하지 않으면 결코 다른 것을 넘보지 말라는 주문이다.

롯데 지분 승계 대부분 마무리

신 회장은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창업 1세대 경영인이다. 1세대 경영인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남아있는 경영인들도 2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있다. 하지만 신 회장은 ‘기업 경영은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는 그룹 홍보실을 통해 “기업이 존재하는 한 현역으로 경영에 몰두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오늘 할 일과 내일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요즘 신 회장의 ‘궁리’는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롯데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롯데는 금융 분야에선 코스모투자자문을, 식음료 부문에선 두산주류를 인수했다.

국외에선 인도네시아 마크로 19개점을 인수했고, 중국 선양에 제2 롯데월드에 대한 건립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선양 제2 롯데월드는 잠실 롯데월드의 두 배 규모다.

여기에 잠실 제2 롯데월드 프로젝트도 곧 첫 삽을 뜰 예정이다. 현대증권의 이상구 연구원은 “최근 롯데의 인수·합병(M&A)은 긍정적”이라며 “롯데의 중심인 유통은 이미 국내 시장이 포화돼 있기 때문에 신성장 동력을 위해 기업 인수를 하거나 글로벌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롯데의 공격 경영을 진두 지휘하는 주인공은 신동빈 부회장이다. 신 회장이 활발하게 경영에 참가하고 있지만 지분 승계는 상당 부분 이뤄진 상태다. 장남인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일본 롯데를, 차남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한국 롯데를 이끄는 식이다. 2009년 현재 롯데그룹은 한국과 일본에 54개 계열사에 연 매출액 41조4000억 원을 올리고 있다.

이 중 한국 롯데의 계열사 지분 평가액을 살펴보면 동생인 신동빈 부회장(1조3238억 원)이 장남인 신동주 부사장(1조2433억 원)보다 많다. 신 부회장은 특히 그룹의 핵심사인 롯데쇼핑의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다. 하지만 아직까지 롯데그룹의 후계자를 신 부회장으로 단정짓기는 힘들어 보인다.

롯데그룹의 지주사라 할 수 있는 호텔롯데의 최대 주주가 일본롯데홀딩스고, 이 회사의 대주주가 신 부사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롯데쇼핑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신 회장의 장녀 신영자 부사장이 롯데쇼핑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도 후계자 향방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신격호 회장의 남다른 고향 사랑

매년 5월이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둔기리에서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마을 조그만 잔디밭에선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남녀노소 1000여 명이 가족 단위로 앉아 식사를 하고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이 잔치를 벌이는 주인공이 신격호 회장이다.

신 회장의 고향인 둔기리는 1960년대 대암댐 건설로 수몰됐다. 신 회장은 고향 사람들이 수몰로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마을 이름을 딴 ‘둔기회’를 조직해 이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둔기리 출신의 신영택 씨는 “회장님이 71년부터 매년 벌여온 잔치”라며 “회장님께선 둔기리 마을의 최고 어른으로 매번 참가하신다”고 밝혔다.

둔기회 회원들은 처음엔 수십 명에 불과했으나 자손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1000명이 넘는다. 잔치가 벌어지는 날엔 신 회장 친인척들도 모두 참석한다. 신 회장은 사재를 털어 소와 돼지를 잡고 소주, 막걸리도 풍성하게 내놓는다. 참석자들에게 기념품은 물론 교통비도 준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잔치는 신 회장이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영택 씨는 “산소에 오를 때 가장 앞장 서는 분이 회장님”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신 회장이 계신 별장에 인사를 드리러 가면 아직도 옛날 일을 잘 기억하신다”고 말했다.

과거 이국인으로서 설움이 컸던 신 회장은 외국인 근로자와 조선족 동포들을 돕는 활동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롯데장학재단과 롯데복지재단을 설립해 소외된 계층을 돕기 위한 복지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글 손용석 기자

일러스트 박용석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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