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타협 이후 남는 문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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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 노동사에 획기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노사정 (勞使政) 대타협이 이뤄졌다.

고용조정 (정리해고) 제의 즉각 도입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국제 신인도를 높일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고 실업.고용안정대책 재원 5조원 확보로 실업불안을 최소화하는 안전판이 확보됐다.

노사 양측의 큰 수확이다.

막판 최대 쟁점이었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처벌조항 삭제문제는 장기과제로 넘겼다.

2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해묵은 노사간 쟁점에 대해 대타협을 이룬 것은 놀라운 발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고통분담의 대타협 정신과 실천과제를 어떻게 법제화하고 현실화할 것이냐가 당면과제다.

합의 내용중엔 현실적 우려를 자아내는 과제도 있고 합의 과정에서 서로 제몫 챙기기에 급해서 현실적 문제를 도외시한 측면도 있다.

또 보완.수정해야 할 대목도 눈에 띈다.

먼저 노사정 협의과정에서 불거진 두가지 사안이 두고 두고 문제의 씨앗으로 남을 수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전교조 합법화 문제는 노사정 합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는 전교조 문제는 노사차원에서 다룰 사안이 아닌 학교교육의 문제임을 지적한 바 있다.

교육문제인 이상 교육적 차원에서 지난날의 아픔을 치유하고 수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3월이면 교원단체의 복수화가 가능하니 교원단체중 하나로 활동하면서 자신들의 개혁의지를 펼치는게 전교조 문제를 푸는 합리적 순리라고 본다.

그러나 의제가 아니었던 교육문제를 노사문제로 끌여들여 합법화하기로 함으로써 교육현장의 새 불씨를 만들었다.

노조전임자의 임급지급문제도 지난 노동법개정때 이미 판가름난 사안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기업의 생사가 달린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전임자의 급여지급으로 후퇴할 수 있겠는가.

원칙에도 맞지않고 상황에도 부적절한 문제를 제기한 나쁜 선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 불씨를 장기과제로 남겨두었다는 자체도 석연치 않다.

시대와 상황이 바뀐 만큼 노동환경이나 노사관계도 바뀌어야 한다는게 시대적 여망이고 세계적 흐름이다.

그러나 이번에 노동관련법이 대폭 바뀌고 노조를 속박했던 여러 금제 (禁制)가 풀리게 되면서 산업현장 나아가 공직사회.학교.정계에서 노동세력이 세결집을 하고 새로운 마찰을 부를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안겨줄 수 있다.

노조의 정치세력화는 얼마나 확대될 것인가.

기업장마다 정치쟁점에 휘말려 근로자의 복지 후생은 뒷전이 되는 것은 아닌가.

99년부터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설치되고 교원의 노동조합이 허용될 경우 이들의 이익집단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런 의문과 우려에 확실한 회답을 줄 수 있을 만큼 노조단체의 성숙한 대응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리해고가 법제화될 경우 현실적 해고대상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을 바르게 알려줘 불안을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

실업.고용기금이 확충됐다지만 정작 보호받아야 할 영세 작업장의 근로자들은 혜택을 받기 어렵게 돼 있다.

이들에 대한 보호대책도 면밀히 강구돼야 한다.

추가 고용기금확보가 추경예산이 아닌 세계은행등의 차관 활용으로 과연 가능한 것인지도 확인해볼 일이다.

노사정 대타협은 경제위기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고통분담선언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한쪽의 득세를 위한 법개정일 수도 없다.

화합과 양보로 이 어려운 시기를 넘기자는 고통에찬 합의가 노사정 대타협이다.

노조의 정치세력화나 막강한 힘의 행사는 선진국에선 이미 지난날의 행태다.

갈길 바쁜 우리가 이 길을 되풀이해서 밟아야 할 것인가.

법개정과정에서 이런 정신이 흔들리지 않고 보완.수정돼 국민들의 우려와 불안을 해소할 수 있어야 참다운 대타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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