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영일기]대성그룹 기조실장 김영훈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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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성그룹은 에너지 전문기업이다.

그러나 한가지 업종에만 매달린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88년 봄 내가 처음 자금담당 임원을 맡았을때 우리그룹의 자금운용 시스템에 허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에너지 수요가 많은 겨울철에 5백억원 규모의 자금이 남아 돌다가도 여름철엔 되레 5백억원 가량의 자금이 달리는 자금불균형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금 담당자들은 이에 따라 여름에는 단자사를 통해 자금을 일시 차입했다가 겨울에는 잉여 자금을 단자사에 빌려주는 방식으로 현금 유동성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름에 빌리는 자금은 실세금리를 적용해 연 20~30%의 고금리를 주고있는 반면 겨울에 단자사에 빌려주는 자금은 1~2%의 금리 밖에 받지 못하는 불평등 계약이었다.

자금담당 간부에게 개선책을 지시했으나 답변은 시원치 않았다.

만일 겨울에 우리가 실세금리를 요구하다 단자사의 눈밖에 나면 여름에 돈빌릴 때 곤욕을 치르게 된다며 관행적인 일이니 만큼 그대로 두자는 것이었다.

그해 겨울이 오자 나는 주거래은행의 담당자를 불러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겨울에 남는 5백억원을 6개월간 정기예금금리로 은행에 빌려주고 여름에는 그 돈을 회수하는 동시에 같은 금액의 대출을 은행이 약속 해달라는 조건이었다.

여름에 은행이 우리그룹에 받는 대출 금리는 정기 예금금리에 플러스 0.25%로 하자는 조건이었다.

주거래은행의 실무담당자들은 이 조건을 받아들였으나 해당 임원진의 반대로 일은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외국계은행들이 우리의 제안에 경쟁적으로 관심을 표명, 거래는 외국계은행의 차지가 됐다.

이에 따라 우리는 겨울철 잉여자금 운용으로 이자수익의 증가와 여름의 부족자금 충당비용 최소화로 2년여만에 1백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또 겨울 잉여자금을 빌려간 외국계은행도 고금리로 이를 운영해 서로가 모두 득을 본 윈윈 (Win - Win) 전략이었던 셈이다.

나는 지금도 우리의 주거래은행이었던 그 시중은행이 오랜 금융관행에 젖어 일이 성사되지 못한 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또 우리가 에너지산업 특유의 계절적 금융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상당한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종금사 (옛 단자사) 들 대부분이 현금유동성 부족으로 몸살을 앓는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하에서 불똥이 우리에게도 튀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그룹은 10년전부터 단자사와 거래를 최소화하고 은행대출은 실제수요가 있을 때만 국한해 차입금을 줄여왔다.

나는 우리 그룹이 에너지기업으로서의 계절성을 극복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윈윈전략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가끔 잠기곤 한다.

김영훈 〈대성그룹 기조실장·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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