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북한과 한미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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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가 모두 경제문제에 몰두해 있을 때도 사라지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북한 문제가 바로 그런 문제중 하나다.

지난해 11월 이후 우리는 외환위기와 경제문제 이외의 다른 어떤 문제들에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북한은 달라진 것이 없고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에 제기되는 문제들도 그대로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이 제기하는 문제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이고 또 다른 문제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 두 문제는 서로 연관돼 있다.

그러니까 북한은 자신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한반도에 무력 충돌을 도발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무력도발은 막아야 한다.

한반도에 또 다시 전쟁이 터진다면 결국 북한의 패망으로 끝나겠지만 한국측에도 상당한 인명피해와 재산파괴가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국의 이해관계가 무력도발 문제에서처럼 그렇게 명쾌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만일 북한체제가 내부적인 원인으로 스스로 무너진다면 그러한 사태는 자연히 통일로 이어질 텐데 무엇 때문에 한국이 그것을 막아야만 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맹방 미국의 입장은 좀 다르다.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일보다 평화, 즉 안정을 원한다.

때문에 미국은 북한의 붕괴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력충돌의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북한을 '연착륙 (soft - landing)'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한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미국의 대 (對) 북한 '연착륙' 정책은 북한을 도와주는 정책으로 보일 수 있고 한반도의 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정책으로 인식될 수 있다.

물론 한국도 무력충돌은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맹방이 북한정권을 도와주는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북한문제로 한.미관계가 더욱 미묘하게 되는 이유는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는 거부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는 점점 더 부드럽게 나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여러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의 접촉과 협상의 폭을 넓혀 나가고 한국은 이러한 미.북한 관계의 진전을 못마땅하게 여기게 돼 결과적으로 미국은 한국을 성숙하지 못한 귀찮은 존재로 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입장 차이 때문에 김영삼 (金泳三) 정부의 대미 (對美) 관계는 상당히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곧 출범하는 김대중 (金大中) 정부는 이미 외환위기를 다루는 과정에서 대미관계의 틀을 새롭게 설정하는 기회가 있었다.

다만 한.미관계는 경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역시 안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으며 안보문제는 결국 북한문제를 뜻한다.

북한문제 자체만 보면 이미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돼 있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북한은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시간은 이미 그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따라서 북한 자체만 보면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계속 현재와 같은 고립상태에 방치해 두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는 경우 불가피하게 전쟁에 개입하게 돼 있는 미국에도 중대한 관심사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문제를 대북한 문제로만 다뤄서는 안되며 더 폭넓은 한.미관계의 틀 속에서 다뤄야 한다.

그리고 한.미관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대북한 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남북한 쌍방관계와 미.북한 직접관계를 연계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분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에 만족할 만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북한 정책 목표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부터 분명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평화라는 현상유지와 통일이라는 현상타파의 개념 사이에서 딜레마에 놓여 왔다.

선택은 어렵다.

그러나 역사는 유동적이다.

대북한 정책의 목표는 '평화적 변화' 의 개념에서 찾아야 한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우리는 일관성 없이 좌충우돌한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성숙한 자세로 정책 목표를 정의함으로써 더 합리적인 한.미관계를 정립하기 바란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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