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수출 아남산업…"근로자 60% 귀향반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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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민들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 금을 모으는데 수출 일감을 놔두고 설이라고 쉴 수 있나요. 망설임없이 설 연휴 반납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일본 등의 주문업체에 반도체 수출납기를 맞추기 위해 설 연휴에도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서울성수동 아남산업 작업장. 휴일인 25일 오후, 불이 환하게 켜진 가운데 무진복 (無塵服)에 마스크까지 쓴 여성 근로자들이 현미경이 설치된 메모리반도체 조립라인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귀성이 시작된 거리 분위기와는 딴 세상이다.

전남영암 출신인 이분영 (李分英.27.여) 씨는 “우리는 (반도체를) 만드는 대로 달러를 벌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로 했고, 고향 아버지도 격려해 주셨다” 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또 전남고흥이 고향인 박복희 (朴福姬.24.여) 씨는 “시골 부모님이 보고싶지만 우리가 있어야 수출납기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같이 사는 오빠 가족만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고 말했다.

이 공장은 직원 1천5백명 (대부분 지방출신의 미혼여성) 가운데 60%인 9백명이 자발적으로 설 귀향을 반납함으로써 회사 규정상 4일인 설 연휴중 3일 (설날 당일만 휴무) 동안 가동에 들어간다.

강태호 (姜太浩.39) 생산과장은 “지난해 설 연휴에는 직원들을 붙잡고 통사정했어도 겨우 15%만 근무했으나 이번에는 너도 나도 근무하겠다고 나섰다” 고 말했다.

이 회사가 설 연휴에도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것은 인텔.모토로라.도시바 등 외국 유수의 전자업체들이 주문한 뒤 보통 2~7일만에 납품을 요구, 납기 준수가 생명처럼 중요하기 때문. 姜과장은 “우리의 설 연휴와 관계가 없는 외국에서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주문한다” 며 “지난해에는 근무하는 직원들이 적어 일부 납기를 못맞추는 바람에 추가주문을 대만 업체에 빼앗겼으나 올해는 문제가 없다” 고 말했다.

회사측은 성수동 공장을 비롯, 광주시 등 4개 공장에서의 설 연휴 가동만으로 4천만달러 (약 6백40억원) 의 수입을 올린다고 밝혔다.

생산량의 98%를 수출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60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으며 올해 수출목표는 75억달러. 한편 이 회사는 설날 당일 기숙사에 남은 직원들에게 떡국과 과일 등을 제공하고 27일 아침 고향으로 떠나는 직원들에겐 귀성버스를 운영키로 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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