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영화 '마르셀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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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인생이란 그런 것. 기쁨은 슬픔으로 인해 빨리 잊혀진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이런 진실을 알릴 필요는 없다” 프랑스의 문호 마르셀 파뇰 (1895~1974) 의 어린 시절 추억이 원작인 영화 '마르셀의 추억' 에서 마르셀은 관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어둠과 슬픔에 눈뜨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빨리 깨달으면 조숙한 것이요, 늦게 깨우친다면 좀더 오래 동심을 유지할 수있어 오히려 운이 좋은 것일까. 그러나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을 수는 없는 법. 세상은 결국 아이에게 진실을 들이밀게 마련이다.

24일 호암아트홀에서 개봉되는 이브 로베르 감독의 '마르셀의 추억' (원제 Le Chateau de Ma Mere:나의 어머니의 성) 은 지난해 여름 개봉됐던 '마르셀의 여름' 의 속편이다.

'마르셀의 여름' 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라면 '마르셀의 추억' 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영화는 훨씬 정겹고 따스하다.

전편에서 발이 아픈 어머니에게 편안한 신발을 챙겨 신겨주던 마르셀이 속편에서는 “넘치는 사랑과 용기, 그리고 기쁨으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에 대한 추억담을 풀어놓는다.

영화는 '마르셀의 여름' 이 끝난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시작한다.

즐거웠던 별장시절을 잊지 못하는 마르셀 (줄리앙 시아마카) 을 위해 어머니 오귀스틴 (나탈리 루셀) 은 교장부인에게 접근, 교사인 아버지의 아침 자습시간을 월요일에서 목요일로 바꿈으로써 온가족이 매 주말을 별장에서 보낼 수있도록 한다.

영화는 마르셀의 가족이 별장으로 가는 지름길에 자리한 부자들의 성 (城) 을 지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린다.

무서운 성지기에게 모욕을 받아 졸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르셀에게 지울 수없는 상처를 남기고 후에 영화감독이 된 그는 그 성의 주인이 되어 그 문을 부숴버림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는다.

영화의 초반에는 웃음 가득한 가족애가 그려진다.

장밋빛 추억으로 가득찬 마르셀의 어린 시절에는 20세기 초 새롭게 부상하는 부르조아 가족의 희망찬 분위기가 배어있다.

왠지 유행에 뒤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유머러스한 따스함과 자연의 서정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마르셀의 여름' 에서 아버지를 평범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면서 한단계 성장했던 마르셀은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음으로써 세상을 가슴 깊숙이 체험한다.

마르셀은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 세속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시골의 염소지기를 하다가 30살에 어머니를 뒤따라간 남동생, 그리고 1차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친구 릴리를 통해 슬픔에 눈뜬다.

또한 귀족인 체하지만 결국 거짓말쟁이임이 드러난 소녀와의 만남은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마르셀의 추억' 에서 우리는 따스한 어머니와 자상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란 한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추억의 다양한 빛깔들, 그리고 연약하지만 현명한 지혜로 위대한 작가를 키워낸 어머니의 사랑을 만난다.

이 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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