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측-검찰 ‘대질신문 불발’ 진실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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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간의 대질신문이 무산된 배경을 놓고 노 전 대통령 측과 검찰이 진실게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문재인 변호사는 1일 “어젯밤(지난달 30일) 박 회장이 ‘저도 대질은 원치 않습니다’고 말한 내용이 조서로 기록돼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날 새벽 브리핑에서 “박 회장이 대질신문을 원했으나 노 전 대통령 측이 ▶대질신문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아니며 ▶시간도 늦었다며 거부했다”고 밝힌 데 대한 반박이었다.

문 변호사의 주장을 전해 들은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박 회장이 대질을 원치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박 회장과 함께 특별조사실에 들어갔던 공창희 변호사도 “문 변호사의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당시 상황이) 녹음이 다 돼 있으며, 박 회장이 그런 말은 안 했다”고 주장했다.

홍 기획관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전날 대질신문이 무산된 직후 박 회장이 작성한 사실확인서까지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2009년 4월 30일 박연차는 (노 전 대통령과) 대질을 원해 15시30분부터 대기하다가 23시20분 입실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8시간을 기다린 대질을 거부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노 전 대통령과 대화를 통해 진실이 드러나길 원합니다”고 적혀 있는 확인서였다.

문 변호사는 이후 “박 회장이 대질신문을 거부하는데 검찰이 억지로 대질을 시키려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다만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저도 대질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전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한 말로 짐작할 수 있다”고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대질신문 무산 책임을 놓고 노 전 대통령 측과 검찰 측이 공방을 벌이는 것은 향후 재판 과정에서 유리한 정황을 선점하기 위한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홍 기획관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이 대질을 거부한 것이 재판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거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생각한 바는 있지만 내심의 의사를 말하기는 그렇다”며 답변을 피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질신문 거부가 재판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4월 30일 오후 11시20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1층 1120호 특별조사실(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전한 당시 상황)

노무현 전 대통령:“고생이 많지요. 자유로워지면 만납시다. 대질은 내가 안 한다고 했어요. 내가 박 회장한테 이런저런 질문하기가 고통스러워서…. 거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저도 괴롭습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이 옆에 대기하고 있으니 인사라도 하라는 말에 “그렇게 합시다”라고 동의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조사받는 특별조사실에 공창희 변호사와 함께 들어섰다.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악수를 했다. 이어 서로 뒷짐을 지고 뻣뻣한 자세로 서서 짤막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어색한 만남은 1분가량에 불과했다. 박 회장은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노 전 대통령과의 대질신문을 위해 서울구치소에서 불려와 11층의 옆 조사실에서 8시간 가까이 대기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거부로 대질신문은 무산됐다.

정효식·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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