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tyle& it design] 도쿄 박람회서 발견한 창의적인 문구들의 멋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글 도쿄=이도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재활용·리필 등 친환경이 대세

문구에도 에코 바람이 거세다. 연필·노트 중 ‘재활용된(recyled)’이라고 쓰인 물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표시가 없었다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감촉이 매끄럽다. 캐릭터 제품처럼 화려한 무늬는 없지만 오히려 그 밋밋함이 심플한 멋을 낸다. 재활용 가죽으로 만든 필통, 금속 대신 종이를 쓴 클립 등도 볼 수 있다.

1 볼펜 막대를 흔한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로 만들었다. 볼펜 심만 갈아 끼우면 영구적으로 쓸 수 있고, 가벼워서 빠른 필기를 하기에도 편하다. 카미펜. 2 손잡이 부분을 나무로 만든 모니터 클리너. 장식보다 기능에 충실했다. 이 제품을 만든 회사는 친환경 문구 전문업체로 메모꽂이, 클립통 등 나무 소재 제품만 생산한다. 에코 프로.

하나만 사도 기능은 멀티

뭐라도 기능 한 가지가 더 추가된 제품들이 많아졌다. 특히 파일·노트 등 사무용품을 중심으로 ‘다기능’ 추세가 두드러져 공간이 작은 책상에서도 깔끔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경기 불황을 의식해 하나를 사더라도 다양한 쓰임새가 있도록 한 세계 디자인 경향의 반영이기도 하다.

3 메모꽂이는 많지만 모양을 생각하다 보면 한두 개 들어가는 게 고작이다. 이 제품은 가죽을 여러 번 겹쳐 만들어 사이마다 열 개 정도는 너끈히 담을 수 있다. 여러 겹 중 몇 개는 틀어놓으면 펜꽂이로도 쓸 수 있다. 와카쿠사. 4 두꺼운 책이나 서류에서 다시 볼 곳, 중요한 부분에 붙이는 포인트 마커다. 보통은 표시를 하면서 메모할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은 제품. 마커 옆 스티커를 길게 만들어 메모장 기능까지 함께했다. 미도리. 5 분류할 서류의 카테고리가 많을 때 일일이 파일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 포켓이 다섯 개까지 있어 하나에 모두 정리된다. 파일을 어느 포켓에 넣느냐에 따라 앞에 비치는 그림도 달라진다. 미도리. 6 오뚝이 병아리의 정체는 수정액과 양면 테이프. 리필 용기를 같게 만들어 케이스 하나만 사면 번갈아 쓸 수 있다. 미도리.

아이디어 무한 도전

‘이런 것까지’ 하고 감탄할 물건들이 넘친다. 아기자기하고 세심한 일본 디자인의 진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은근슬쩍 ‘난 남들과 달라’를 보여주고 싶은 이라면 안 사고는 못 배길 듯. 단, 가격은 보통 제품보다 2~5배 이상 비싸다.

7 급하게 메모장에 적어둔 뭔가를 찾아야 할 때 소요 시간을 줄여주는 제품. 등고선을 본떠 계단식으로 만든 메모장에 중요도·내용 등을 나눠 쓰면 편리하다. 드릴 디자인. 8 묶고 있을 땐 보통 고무줄과 다를 바 없지만 풀면 공룡 모양으로 되돌아오는 고무 밴드. 한 패키지에 두께·크기·색깔별로 들어있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플러스 디. 9 책을 사면 으레 끼워주는 판촉용 북 마크가 지겹다면 이건 어떤가. 스웨이드 가죽으로 만든 동물 모양 북 마크는 색깔도 튄다. 책을 펼칠 때마다 동물 꼬리를 들어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디플러스. 10 이걸로 청소가 될까 싶지만 대답은 ‘그렇다’이다. 어렸을 적 미니카를 굴리던 추억까지 떠올리도록 만드는 게 이 제품의 미덕. 차 안에 있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청소 솔 두 개가 바쁘게 움직이며 책상 먼지를 털어준다. 미도리.

입맛 따라 리모델링

직접 만들고 꾸미는 DIY는 인테리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 입맛에 맞게, 필요한 것만 쏙쏙 골라 쓰는 문구들이 늘고 있다. 도쿄 긴자 거리에 위치한 문구 전문 매장 ‘이토야’의 이치하라 요시코 홍보팀장은 “소비자들의 입맛이 다양해지는 한편 버리는 것 없이 알뜰히 쓰고 싶은 욕구도 늘면서 맞춤형 문구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11 이른바 ‘프리(free) 캘린더’다. 날짜가 적힌 윗공간에 다이어리처럼 사진·스티커를 붙이거나 그림을 그려 꾸미면 된다. 탁상용 캘린더로 접어 세울 수 있다. 이토야. 12‘트래블러스 노트’라는 이름 때문에 여행용 제품 같지만 일상에서 더 요긴하게 쓰이는 다이어리다. 줄 쳐진 노트, 달력, 메모장 등 필요한 속지만 맘대로 선택할 수 있고 넣었다 빼기도 자유로워 편리하다. 미도리. 13 맛집 순례가 취미인 사람에겐 다이어리 대부분이 레스토랑 정보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여행·쇼핑광들도 비슷한 상황일 터. 이 노트는 취미 생활에 따라 테마별로 고를 수 있게 디자인됐다. 카페&레스토랑 노트에는 식당 이름·위치·평가 등을 적는 칸이 따로 있고, 기억에 남는 문장과 감상을 적는 난도 마련돼 있다. 막스.



“문구는 오락처럼 즐기는 것”
‘디자인필’ 아이다 이치로 사장

“디자인 문구란 자신이 누구고, 어떤 라이프스타일로 사는지를 보여주는 수단이에요. 그래서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소모품인 클립·수첩도 디자인 문구를 찾죠.”

17년간 일본 문구업체 ‘디자인필(옛 미도리)’을 이끌어온 아이다 이치로(52ㆍ사진) 사장은 디자인 문구의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디자인필은 1980년대 초 일본에 처음 디자인 문구의 개념을 도입했고 종이·사무용품 등을 함께 만드는 유일한 종합 문구 브랜드다. 지난해 6월부터 한국을 첫 해외 시장으로 삼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강남 교보문고에 첫 매장을 열었다). 도쿄 본사에서 그를 만나 일본 디자인 문구에 대해 들어봤다.

-일본 디자인 문구의 강점은 무엇인가.

“경쟁 상대가 되는 유럽 문구는 역사가 길다. 100여 년의 역사가 내구성과 품질을 보장하고, 그것이 다시 제품을 홍보하는 수단이 된다. 이에 반해 늦게 출발한 일본 디자인 문구는 기능성·재미에 승부를 걸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신상품을 자주 내놓는다.”

-한국을 첫 해외 공략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유럽이나 미국은 시장 규모는 크지만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은 실용성을 강조한다. 가령 종이 질이 좋은 일본제 메모지나 수첩을 보고 그들은 ‘이렇게 좋을 필요가 있나’라며 구매를 꺼린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처럼 제품에 대한 안목이 높아 구매로 연결된다. 우리에게 한국은 시장 규모는 작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복제 상품에 대한 대책이 있나.

“디자인을 베끼는 중국 제품이 많다. 복제품의 경우 디자인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제품의 일관된 컨셉트를 지키기는 힘들다. 즉, 지속적인 개발력은 결코 복제될 수 없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값비싼 디자인 문구의 활로는.

“소득은 조금 줄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안목은 한번 높아지면 언제나 그 이상을 추구하게 된다. 소유욕 또한 커지고. 불황에도 명품이 꾸준히 팔리는 이유도 이것이다. 디자인 문구에 대한 시장 가능성 역시 무한대에 가깝다. 일본의 경우 5년 내 2배 규모의 성장이 기대된다.”

-한국 디자인 문구 업체에 대한 조언은.

“디자인 문구 시장이 커지는 건 나라가 즐겁고 윤택해지면서 생기는 새로운 현상이다. 이윤을 남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소비자들이 아이디어 넘치고 예쁜 물건들을 보며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오락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도 디자인으로 생활을 즐겁게 만들자는 컨셉트를 유지하려 한다.” 도쿄=이도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