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친절한 안내방송으로 '방송왕' 에 뽑힌 기관사 박태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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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오전6시30분.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 탓인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승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다.

도시철도공사 소속 지하철 5호선 기관사 박태서(朴泰緖) (32) 씨는 오늘도 서둘러 몸을 실은 승객들을 위해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는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 박태서입니다.

손님 여러분을 가시는 역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IMF 한파로 어려운 경제상황을 대중교통 이용으로 극복합시다.

감사합니다.

"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힘차고 또박또박한 朴씨의 목소리에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길에 나섰던 승객들의 표정엔 일순간 미소가 감돈다.

도시철도공사 소속 지하철 5, 7, 8호선 기관사들이 마치 항공기 조종사처럼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안내방송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 朴씨는 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 4백60여명 중에서도 가장 친절하고 모범적인 안내방송을 하는 '방송왕' 으로 뽑혀 지난해말 사장 표창까지 받았다.

朴씨는 혼잡한 열차 안에서도 승객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그때그때 적절한 안내방송을 준비한다.

따로 준비한 원고는 없지만 요즘엔 신년인사와 함께 IMF 한파에 시달리는 승객을 위로할 문구를 빠뜨리지 않는다.

답십리~방화 구간이나 답십리~마천.상일동 구간을 왕복하면서 朴씨가 마이크를 잡는 것은 평균 4~5차례. IMF 한파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이 지난해 11월에 비해 15% 이상 늘었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직접 통화하고 싶으니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 '이제야 제 대접 받고 지하철을 타게 됐다' 는 내용의 격려전화가 하루에만 10여통씩 걸려온다.

"그동안 승객을 짐짝처럼 다룬다는 비판도 많았지만 안내방송을 시작한후 승객들의 반응이 달라졌어요. 방송을 듣고 승객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볼 때마다 가슴이 뿌듯합니다.

"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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