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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비디오·게임방등 통합 '멀티방' 첫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방 (房)' 의 흡인력은 무섭다.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진 노래방부터 '야릇한 본능' 을 분출시킨 전화방까지 밀실에 모여드는 이 시대의 욕구들은 종종 우리를 당혹케 한다.

그곳은 차단막이 드리워진 밀폐공간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격리되는 순간, 사람들은 용감해진다.

사회구조에 의해 억눌려온 욕망들을 한꺼번에 분출하고 마는 것이다.

장단에 맞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통해 음담패설을 주고 받으며, 비디오 앞에서 마음껏 몸을 비빈다.

급기야 당국의 철퇴가 날아온다.

그래도 방은 또 생겨난다.

서구사회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밀실문화가,끝없이 우리곁에서 재생산을 거듭하는 것은 분명 억압된 욕망 때문일 터. 이제 모든 방의 효용을 한데 모은 '멀티방' 이 등장한다.

노래방.게임방.비디오방.통신방 기기의 기능들을 합친 기계가 탄생한 것이다.

컴퓨터 응용프로그램 개발업체 멀티랜드 (02 - 761 - 8371)가 만든 이 장치는 다음달 중순께 서울 신촌 연세대앞에 첫선을 보인다.

시간당 5천~1만원의 이용요금을 내면 한방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마음껏 골라 즐기게 되는 것이다.

“기계 10대 한 세트를 3천8백만원 정도에 설치해줄 생각입니다.

아울러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지 않도록 건전 운영방침을 지켜나갈 계획입니다.”

멀티랜드 최형호 (35) 연구실장의 얘기다.

멀티방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화상회의' 기능이다.

이는 이용객이 다른 지역의 멀티방 손님과 화면을 통해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주말부부나 친구들에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형태의 전화방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어른을 대상으로 성인용 인터넷 사이트를 접속케 하는 성인방 기능도 독특하다.

신촌에 1호점을 열게되는 박창식 (34) 씨는 “프린터를 설치해 OA기능도 제공하도록 구상하고 있다” 며 “단순히 유흥공간에 머물도록 하진 않을 생각” 이라고 말한다.

멀티방이 무수한 방들과 전쟁을 벌여온 당국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 아직까진 미지수다.

하지만 구직난 상황과 맞물려 가맹점 개설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어 멀티방은 계속 늘어날 듯 싶다.

도처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무수한 형태의 욕망을 한곳에 끌어모으려 하는 멀티방의 시도가 어떤 모습으로 귀결될지 지켜볼 일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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