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청론]정부개혁·규제혁파만이 시장기능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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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새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됐고 한달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이미 경제를 포함한 새로운 국정운영의 틀이 짜지고 있다.

경제운용을 책임지게 될 경제 관련팀은 우리가 처한 국가부도 위기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경제를 운용함에는 일관된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특히 새정부는 다음의 세가지 분야에서 명확한 원칙을 세워줄 것을 각별히 부탁하고 싶다.

첫째, 시장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을 엄격히 구분하라는 것이다.

IMF와의 합의각서가 아니더라도 시장경쟁원리에 입각한 경제운용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우리경제의 유일한 활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개혁과 규제혁파를 통해 작고 효율적이며 봉사하는 정부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장이 실패한다고 해서 정부가 나서면 더 나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정부실패가 시장실패보다 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도 일만 꼬이면 정부를 탓하고 무엇을 해 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하는 유아기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경쟁력 향상' 과 '경제력 집중억제' 간에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한다.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면서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한거번에 잡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은 경쟁력 향상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경쟁압력을 높이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 경쟁력 향상의 지름길이며, 새정부의 기업정책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문경영인 체제여부, 업종전문화 여부, 나아가 부채 비율의 높고 낮음 여부는 사실 정부가 직접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기업이 위험을 감안해 선택하고 시장이 판정할 사항이다.

나아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적법하게 부를 축적한 경우 이는 존경의 대상이지 질시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어떤 기업이 진정으로 우리를 위하는 기업인지를 분명히 하고 국적에 관계없이 우리편을 돕는 정책을 펴야 한다.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 땅에 남기는 부가가치의 크기다.

미국 기업이든 일본 기업이든 기술을 가지고 와 이땅에 공장을 짓고 우리 사람을 고용해 생산하고 수출해 우리 경제에 부가가치를 많이 남기는 기업은 우리편이고 우리를 위하는 기업인 것이다.

아직도 정부의 정책이나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국적에 따라 우리편과 저쪽편을 가르는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편견이 강하다.

이런 편견은 단기적으로는 외환위기극복에 절대로 필요한 외국 투자의 유치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진정한 세계화를 이룰 세계인과 함께 살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벽이다.

이상의 세 가지 사항은 역대 정부와 우리 국민들이 정서에 휘둘려 뚜렷한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해 온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정책이 일관성과 투명성을 잃게 되었고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를 믿지 못하게 했고 외국인들에게는 '믿지 못할 나라, 한국' 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한국식 경제운용, 한국식 기업경영이 통할 여지는 이제 없다.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이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경기 규칙임을 명심하고 이 규칙에 따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실력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에 온 힘을 쏟아야 할때다.

이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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