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를 '슬프게 하는 것'…고학력 여성이 외국 가정부로 나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아시아 금융위기가 장기화되자 동남아에서는 미신 (迷信) 이 인기를 끌고 고학력 여성들이 대거 외국 가정부로 앞다퉈 나가는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태국에서는 요즘 복권 당첨을 예언하는 유인물들이 신문 가판대의 빈 자리를 약삭빠르게 차지했다.

불경기 여파로 신문 판매량이 크게 줄어든 대신 미신에 의거한 복권 안내 팸플릿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이 팸플릿들은 특정한 날에 미리 점지된 숫자를 택하면 수십년래 최악의 경제난을 물리치고 부자가 될 것이라고 속삭인다.

3백만바트 (약 9천5백만원) 의 상금이 걸려있는 복권의 추첨 결과가 발표되기 2주전부터 특정한 수자의 복권을 사게 되면 틀림없이 당첨될 것이라고 겁도 없이 호언 장담한다.

한 부에 20~40바트 (약 6백80~1천4백원) 씩 하는 이 간행물들은 매달 1일과 15일 두 차례 발간되는데 가판대에 나오자마자 금방 매진될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홍콩에서는 가정부 일자리를 놓고 필리핀.인도네시아의 고학력 여성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가치가 폭락함에 따라 대졸 여성들이 홍콩에서 가정부 자리를 얻기 위해 밀려들면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필리핀 여성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홍콩내 인도네시아 근로자 직업소개소에 따르면 홍콩의 외국인 가정부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그 자격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인도네시아 출신의 대졸 여성들의 쇄도하면서 같은 돈으로 사람을 마음대로 골라 쓸 수 있게 됐다.

루피아화의 폭락으로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국내에서 홍콩인이 세운 완구업체에 취업할 경우 1백 홍콩달러 (약 2만1천원) 를 월급으로 받는다.

하지만 홍콩의 가정부로 취업하면 최저 법정월급인 4천 홍콩달러 (약 84만원)가 보장된다.

월급이 40배에 이르다 보니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필리핀 여성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홍콩의 가정부 자리를 놓고 통화위기로 똑같이 고통을 겪는 동남아 국가들의 여성들이 눈물겨운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형 증권사인 페레그린의 부도로 최근 금융위기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홍콩의 경제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먹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중국인 사회에서 줄곧 호황을 누렸던 음식점들이 연쇄 도산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어 불경기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광둥 (廣東) 식 딤쌈 (點心) 을 판매하는 대형 주루 (酒樓) 들의 매출은 지난해말부터 절반으로 줄어들어 올 상반기까지 약 8백여개의 대형 음식점들이 도산을 면치 못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홍콩 = 유상철 특파원.유광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