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용 금융대사 보고서 분석…미국 "왜 개혁 더디나"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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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환위기 해소의 열쇠를 거머쥐고 있는 미국이 여전히 한국의 약속이행 여부를 놓고 불만을 표시, 1백억달러 조기집행 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미국의 뉴욕 월가 (街) 및 워싱턴으로 최근 급파됐던 정인용 (鄭寅用) 국제금융대사가 비상경제대책위에 제출한 보고서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로렌스 서머스 재무부 부장관이 鄭대사에게 밝힌 내용은 충고이상의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다.

서머스 부장관은 단도직입적으로 세가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첫째, 한국은 상황의 긴박성을 인식하고 미국에 대해 약속했던 내용을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

둘째, 외환 통계자료를 정확히 파악해야겠다.

각종 금융상품의 내용과 보증업무, 장부외 거래내역을 종합적으로 투명하게 알려달라. 셋째, IMF등과 협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이쪽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경제자문관으로 써 달라. " 그는 여기에 덧붙여 "민간은행의 단기외채 만기연장 등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세컨드 라인 (Second Line.G7 선진국들이 정부차원에서 한국에 빌려주기로 한 외화) 의 지원이 어렵다" 는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용환 비대위대표는 "메이저 은행이나 투자은행들이 단기외채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는다면 선진 7개국이 투입한 자금이 바로 그들 민간은행들에 빠져 나갈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염려한 발언" 이라고 배경설명했다.

그러나 서머스 발언에는 보다 심상찮은 뜻이 숨어 있다.

당장 15일에 들어오도록 돼 있는 미국의 17억달러 지원도 경우에 따라서는 유보하겠다는 의사표시로 해석해야 한다.

만약 한국이 지난달 24일 1백억달러 조기집행시에 약속했던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생각을 달리하겠다는 뜻이다.

정리해고제 도입에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을 비롯해 외환관리법 폐지 등 다섯가지 약속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만약 미국이 17억달러의 조기집행을 미루면 일본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의 달러지원 역시 뒤로 미뤄지게 될 수밖에 없다.

한편 1백억달러 조기집행을 계기로 미국이 한국의 경제정책에 깊숙이 개입하겠다는 의사도 포함돼 있다.

단순한 외환통계뿐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입안까지 일일이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차원에서 미 재무부가 한국의 재경원에 이같은 뜻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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