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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짧다고 단속하던 36년 전 미니스커트 유행시킨 윤복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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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1973년 4월 28일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다는 이유로 천안에 사는 한 술집 종업원(당시 20세)이 이틀간 구류 처분을 받는다. 그녀는 무릎 위 20㎝가 올라간 치마를 입고 걸어가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그해 2월 경범죄 처벌법에 ‘저속한 옷차림’에 대한 규정이 들어가면서 첫 처벌 대상이 된 것이다. 미니스커트는 무릎 위 15㎝ 이상이 단속 대상이었다. 경찰들은 대나무자를 들고 다니며 여성들의 드러난 허벅지 길이를 쟀다(사진). 이 조항은 올림픽을 치른 뒤인 88년 12월 31일에 없어진다. 치마 끝을 올리려는 여심과 그것을 내리려는 공권력의 15년 승강이였다.

이 땅에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사람은 가수 윤복희씨로 알려져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활약하던 윤씨는 67년 1월 세배차 귀국을 했다. 이날 공항에 짧은 치마를 입고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보수적인 남성 몇이 이 모습을 보고 계란을 던졌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 윤복희씨는 지난해 여름 한 방송에 출연해 그때 ‘미니’를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41년 만의 정정(訂正)이었다. 겨울 새벽에 도착해 워낙 추웠기에 털코트를 입었다는 것이다. 또 통금이 있던 때라 촬영 나온 사진기자도 없었다고 한다. 그럼 어찌된 영문인가. 항간의 소문이 정설로 굳어진 것은 96년에 나온 한 기업 광고의 힘이었다. 광고대행사는 대역을 써서 공항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그럼 윤씨를 미니스커트의 선구자로 부르는 건 틀린 걸까. 그렇지는 않다. 67년 미니 치마 패션을 기획한 이는 디자이너 박윤정씨였다. 3월 30일 세종호텔에서 패션쇼가 있었다. 가수 윤복희는 이 무대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델로 변신한다. 박씨는 다리 전체가 고르게 가는 여성이 국내에는 없어 고심하고 있었는데 윤복희씨를 본 뒤 쇼를 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무릎 위로 훌쩍 뛴, 깡총한 치마를 입고 등장한 윤씨를 보고 관객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이후 미니 열풍이 불었다. 69년 5월 신문의 한 칼럼에선 “스커트는 올라가고 두 팔은 물론 어깨까지 노출시켜서 보기에 눈이 부실 지경”이라고 말을 꺼낸 뒤 “대체 이런 여인들은 누구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이런 교태를 부리느냐”고 꾸짖는다. 40년 뒤인 요즘은 어떤가.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가 입었던 교복이 유행을 타면서 여중·고생의 교복들이 미니스커트가 다 됐다고 혀를 차는 시대 아닌가.

이상국 문화칼럼니스트 isomi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