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안에 자회사 매출 1조원 올리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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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24면

노정익(56) 서울대학교기술지주㈜ 사장은 요즘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30년 넘게 ‘현대맨’으로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습관이 돼 버린 오전 7시 출근 생활에서 벗어났다. 서울대 후문 옆 사무실에 오전 9시쯤 ‘느긋하게’ 출근한다. 그렇다고 하는 일까지 여유롭다는 얘기는 아니다. 모교인 서울대 요청으로 지난해 4월 ‘지주회사 추진단장’을 맡은 후 지내온 1년간은 ‘돌관 공사’의 연속이었다.

모교에 둥지 튼 지 1년 노정익 서울대기술지주㈜ 사장

지난해 10월 말 지주회사를 출범시키고 올 들어 벤처 자회사를 잇따라 세우는 게 녹록지 않아서다. 노 사장 주변에선 ‘지주회사가 이렇게 빨리 제 궤도에 오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온다. 국립대 특유의 ‘공무원 문화’를 감안하면 의외의 속도전이라는 것이다.

지주회사는 올 3월 중소 철강회사인 한도철강과 5대5로 공동 출자해 첫 자회사 아이젠텍(IGENTECH)을 설립했다. 플라스틱 사출 제품의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노즐을 만드는 회사다. 2호 자회사인 ㈜STH팜(Pharm)도 곧 닻을 올린다. STH는 서울대기술지주(Seoul Techno Holdings)의 영문에서 땄다. 지주회사와 서울대 약대, 건일제약이 힘을 합쳐 만든 제약 연구개발(R&D) 전문 기업이다.
노 사장은 “올해 5~6개의 자회사를 설립하는 게 목표”라며 “3호 자회사로 공공 디자인 분야를 특화한 미술 매니지먼트 회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대형 건축물의 건축비 일부를 미술품 구입에 쓰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건축주나 예술가 양쪽 모두 불만이 많습니다. 신뢰도 있는 서울대 브랜드를 잘 활용하면 건축주와 예술가를 투명하게 연결해 주는 장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지요.”

현재 검토 중인 프로젝트는 여럿이다. 동영상 강의처럼 서울대의 경쟁력 있는 콘텐트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도 구상 중이다. 이를테면 KBS가 인터넷 자회사 KBSi를 운영하면서 방송 콘텐트 사업을 하듯이 서울대(SNU)도 ‘SNUi’ 같은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 사장은 “10년 안에 자회사 50여 개를 설립해 1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했다. 자회사 매출이 1조원대가 되면 지주회사 수익은 600억원 정도 된다고 한다. 목표를 턱없이 높여 잡은 건 아니다. 현재 서울대는 약 3000개의 특허 기술을 갖고 있다. 매년 200~300개의 특허가 새로 출원되고 있다. “기술지주회사는 교수와 학생들이 피땀 흘려 개발한 특허가 사업화로 결실을 보도록 정성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 같은 회사입니다. 벤처의 성공 확률을 높이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도 늘려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겠습니다.”

아직 그가 넘어야 할 고개는 많다. 우선 돈 문제다. 현재 지주회사의 자본금은 70억원. 그중 현금은 30억원뿐이고 나머지는 기술 현물이 출자됐다. 준비 단계에서 자본금 1000억원 얘기까지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단출한 출발이다. 매년 5~6개의 자회사를 세우려면 최소 자본을 투입한다 해도 운영경비를 포함해 15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현재 자본금으론 2~3년 버티기가 쉽지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본금이 빠듯하다 보니 설립된 자회사들은 다 조인트벤처다. 지주회사 혼자 자회사를 세우거나 이미 창업한 기업을 자회사로 편입시키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면 수익을 내려면 최소한 5~7년은 기다려야 한다. 지주회사가 돈을 벌려면 자회사에서 배당을 받거나 자회사를 증시에 상장시켜 보유 지분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 단계에서 써야 할 돈과 버는 돈의 불일치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수익사업을 할 수도 없다. 기술지주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주회사나 금융위원회의 금융지주회사와는 다르다. 근거법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이다. 자회사 설립·경영관리 이외의 영리사업은 원천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 사장은 “지주회사의 업무 영역을 너무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판단돼 개선책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했다.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0억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했다.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초기 투자금은 댈 수 있지만 2~3차 증자까지 참여하는 건 힘들다. 이때 필요한 게 외부의 벤처자금이다. 노 사장은 “언제든지 투자받을 수 있도록 약정이 돼 있다”고 했다.

서울대 교수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도 과제다. 그러려면 대학과 연구자·지주회사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성공적인 사업 모델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창업하는 것보다 지주회사와 함께 사업하는 게 성공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대학 지주회사는 특이한 벤처캐피털이다.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털이 관심 두지 않는 창업 초기단계에 투자를 한다. 그러니 사업 위험도 더 크다. 반면 벤처캐피털은 상장 직전의 벤처기업을 선호한다. 투자금 회수를 빨리 할 수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좋은 기술을 개발해 시제품까지 완성했지만 막상 양산을 위해 생산라인을 깔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시점에서 돈 가뭄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벤처캐피털이 참여하는 2~3차 증자 이전 단계를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부른다. 대학에서 창업하는 기술 벤처회사 대부분이 5년 이내에 망하거나 살아남더라도 직원 두세 명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 사장이 대학 지주회사 초기 정착 단계에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래서다.

“상장을 눈앞에 둔 회사만 찾는 벤처캐피털이 있다면 이는 벤처 투자라기보다 자본이득을 챙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벤처 투자도 요즘 얼어붙어 있습니다. R&D 능력이 있는 벤처를 키울 수 있는 주체는 현재 대학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을 만들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으로 성장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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