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06>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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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16면

예정대로라면 독자들이 이 신문을 받아들 시간(일요일 오전 8시)에 박찬호는 시즌 세 번째 선발 마운드에 올라 있을 것이다(혹시 신문이 배달되는 도중에 일정이 변경되더라도 ‘인사이드’의 독자는 양해해 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 박찬호는 앞선 두 번의 등판에서 모두 부진했다. 인터넷(mlb.com)을 통해 두 경기를 봐야 했던 ‘인사이드’도 아쉬웠다. 그리고 나름 느낀 게 있다. 지금 박찬호에게 필요한 것은 요즘 쓰는 말로 ‘디테일(detail·미세함?)’ 이라는 거다. 이전 중앙일보 지면에서 ‘확대경’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박찬호에게 필요한 디테일

박찬호는 152㎞의 빠른 공, 140㎞의 슬라이더, 128㎞의 커브를 보여 줬다. 오른쪽 타자의 무릎 쪽으로 떨어지는 투심패스트볼과 나비 날개처럼 움직이는 체인지업도 갖고 있었다. 그 체인지업은 첫 번째 등판 때 추운 날씨 탓에 별로 써먹지 못했지만 두 번째 등판 때는 제대로 움직였다. 이처럼 그의 ‘구위(stuff)’에는 큰 탈이 없었다. 그러나 운영의 섬세함은 아쉬웠다. 이는 어쩌면 정규 시즌 경기에서 선발로서의 감각이 떨어져서 일 수도 있다. 지난 20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의 한 장면이다.

0-0 3회 초. 선두 타자는 8번 타자 에버리스 카브레라다.

상대 타자가 마이너리그에서 갓 올라온 햇병아리고, 야수 가운데 가장 타격이 약한 8번 타자다. 그리고 뒤에는? 9번 타자 투수다. 그걸 감안하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이’ 8번 타자를 내보내는 거다. 아웃 카운트 ‘원(one)’을 잡는 게 필수다. 내보내면 다른 타자의 출루보다 상처가 몇 배로 커진다. 박찬호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초구에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왔다. 그런데 ‘딱’ 걸렸다.

약한 타력에 비해 가진 게 빠른 발이 전부인 그 8번 타자는, 박찬호가 초구에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온다는 걸 계산했다. 자신이 8번 타자고, 뒤에 9번 투수가 기다린다는 걸 정확히 파악한 거다. 무슨 말인가 하면 8번(타격이 약하고), 뒤에 9번이라는(절대로 피해 가지 않고 정면승부할 거라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뭔지를 제대로 준비했다는 거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

초구에 기습 번트를 댔다. 박찬호와 크리스 코스테(포수) 배터리 모두 당황했다. 내야안타가 됐다. 무사 1루에 9번 타자 투수. 박찬호는 희생번트를 내주고(이 장면도 너무 쉽게 번트를 대줬다는 점이 있지만 핵심은 8번과의 승부였으므로 뚝!) 1사 2루에서 1번 타자로 이어지는 위기에 몰렸다. 야구에서 위기라는 늪은 발을 빼 도망갈수록 깊어진다. 박찬호는 3실점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8번 타자와의 승부는 다른 어떤 타자보다 치밀해야 했고, 특히 초구는 최대한 신중했어야 했다.

박찬호가 서 있는 곳은 최고수들의 무대 메이저리그다. 그곳에서 승자가 되려면 굵은 선(구위와 체력)은 기본이며 ‘디테일’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는 선(마운드 운영, 상황 대처 등 멘털)이 동반되어야 한다. ‘우월한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선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걸 가져야 한다는 거다. 보이지 않는 디테일의 힘. 우리네 세상도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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