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곁에 산소호흡기 두고 닉슨과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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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가에 ‘딸을 낳으면 탕원성처럼 키워라(生女當如唐聞生)’라는 말이 있다. 탕원성(唐聞生·66·사진)은 1970년대 초 마오쩌둥(毛澤東)의 영어 통역으로 다른 네 명의 젊은 여성 통역과 함께 ‘다섯 송이의 금꽃(五朶金花)’으로 불렸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중국으로 온 그의 영어 이름은 낸시 탕. 키신저는 미·중 수교 협상 당시 탕이 미국 출생임을 알고 “당신은 미국 대통령 경선에 나갈 수 있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현재는 쑹칭링(宋慶齡)기금회 부주석으로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21세기 한·중교류협회가 주최한 ‘한·중 여성지도자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중국 최고의 영어 통역사’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통역의 원칙이 있다면.

“신(信)·달(達)·아(雅)로 요약할 수 있다. 통역은 첫째 정확성으로 믿음을 줘야 하고, 둘째 표현력이 뛰어나야 하며, 끝으로 문장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중 ‘신’이 가장 중요하다.”

-영어를 배우는 젊은이에게 충고를 한다면.

“외국어는 어릴 때 배워야 효과적이다. 영어를 잘하려면 우선 영어권 문화를 깊이 이해하라고 말하고 싶다.”

-마오쩌둥의 통역으로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어떤 것인가.

“1970년 12월 28일 이뤄진 마오쩌둥 주석과 『중국의 붉은 별』을 펴낸 미국인 작가 에드가 스노 간 대담이다.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진행된 두 ‘오랜 친구(老朋友)’의 대화는 미·중 수교의 서막을 연 사건이었다. 당시 마오 주석은 ‘만약 닉슨 대통령이 온다면 나는 그를 만날 것이다. 만나서 싸워도 좋고, 또 싸우지 않아도 좋다. 그가 대통령 신분이든 아니면 여행자 신분이든 다 좋다. 오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대치하던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발언이었다. 협상은 그렇게 시작됐다.”

-중국을 방문한 닉슨과 회담할 때 마오쩌둥은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쇠약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지 않다. 한 시간 정도 이어진 닉슨 대통령과의 대담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마오 주석은 유머를 섞어가며 국제 문제 등을 얘기했다. 당시 마오 주석이 중병을 앓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오 주석은 온 힘을 다해 대화에 임했다. 닉슨 대통령을 맞이할 때는 일어선 채로 악수를 했지만, 헤어질 때는 일어서지도 못했다. 악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회담에 기력을 다 쏟아부었다. 닉슨이 자리를 뜨자마자 옆에 있던 산소호흡기를 코로 가져갈 정도였다. 생명을 건 외교였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통역으로도 일해 그를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을 텐데.

“저우 총리는 인민을 사랑한 위대한 지도자이다. 76년 1월 그가 사망했을 때 외교부 직원들은 퇴근도 않고 밤새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지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베이징 사람이 거리에 나와 그의 운구 행렬을 따라갔었다.”

저우 총리 얘기가 나오자 탕 부주석의 눈에 이슬이 맺혔고 그는 곧 목이 메인 듯 인터뷰를 정리하자고 했다.

글·사진=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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