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집없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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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가운데 견유 (犬儒) 학파라는 학파가 있다.

고매한 철학자들에게 감히 '개 견' 자를 붙인 것은 그들이 마치 거리를 헤매는 개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성의 가치관을 무시하고 극도로 간소한 생활을 하면서 무욕 (無慾) 과 자기 억제를 신조로 삼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걸식주의자 (乞食主義者) 라고 비꼬았다.

견유학파철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디오게네스는 나무통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무통 속의 디오게네스' 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가 남긴 숱한 일화 가운데 이런 얘기가 들어 있다.

어떤 사람이 디오게네스에게 무슨 책을 쓰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대는 진짜 무화과보다 그림 속의 무화과가 좋은가.”

책 속의 고매한 이론보다 눈앞의 현실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어느날 한낮에 디오게네스가 등불을 들고 나타났다.

사람들이 이유를 물으니 "사람을 찾고 있다" 고 답했다.

세상에 진정한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덕있는 인간이 없다는 얘기다.

알렉산더대왕이 코린트를 지나다 디오게네스를 찾아와 소원이 무엇인가 물었다.

디오게네스는 "대왕께선 햇볕을 가리지 마시오" 라고 답했다.

알렉산더는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 고 말했다.

오늘날우리 생활주변에서도 디오게네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겐 디오게네스와 같은 고매한 철학이 없고 절박한 생활고가 있을 뿐이다.

소위 선진국에 가면 대도시 후미진 구석에서 홈리스들을 어김없이 만난다.

개인적으로 사회 발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퉁겨나온 탈락자들이며, 사회 입장에선 가리고 싶은 치부다.

최근 경제호황을 누리며 기록적인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올해 들어 홈리스 숫자가 3% 증가했다고 한다.

또 이들중 당장 식량을 지원하지 않으면 아사 (餓死) 할 지경인 사람들이 지난해에 비해 16%나 늘었다.

이들은 미국 정부의 복지예산 축소로 더욱 곤경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례없는 금융위기로 국가 자체가 부도지경에 몰린 올 겨울은 한국의 디오게네스들에게 더욱 춥고 긴 겨울이 될 것이다.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움으로써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진 우리의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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