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기행]25.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강원 진부 호명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화해와 용서. 춥고 각박한 세상에 인간이 지필수 있는 가장 훈훈한 난로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배창호감독.84년제작) .6.25전쟁의 와중에서 언니에게 버림받은 동생이 순백색 사랑으로 이기적인 언니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강원도평창군진부면호명리. 배창호 감독이 '그해 겨울' 의 주무대로 삼은 곳이다.

호명리는 범 (虎) 이 우는 (鳴) 소리가 들렸다는 마을. 호명초등학교앞에 가면 눈으로 뒤덮인 하얀 벌판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용평스키장 입구에서 시작된 피난민행렬. 어린 수지 (유지인분) 와 수인 (이미숙 분) 은 호명리에서 호랑이 대신 비행기를 만나 기관총세례를 받고 어머니가 숨진다.

병두산 (해발9백89m)에서 부는 세찬 바람은 눈보라를 일으키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면 산토끼.고라니.오소리등이 돌아다닌다.

이 외딴 곳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수지에게 철부지 수인은 '혹덩어리' 였다.

결국 수지는 떡을 사온다며 폐가에 수인을 버린채 오빠를 찾아간다.

“추운데 젊은 사람들이 왜 이러고 있나. 빨리 들어오래요. 뜨신 당귀차를 먹으면 몸이 쫙 풀릴기니 - .” 지게에 나무를 얹은채 집으로 들어가던 정철화 (68) 씨는 나그네들을 방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포근한 산간마을의 모습이 이런 것인가.

약초를 햇볕에 말리기 위해 설치한 '약초가리' 와 옥수수대들을 묶어놓은 '강냉이짚' 이 마당을 지키고 있다.

소나무를 잘게 자른 장작을 때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창호지를 댄 방문은 우렁찬 호랑이 울음소리를 낸다.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어요. 겨울철은 약초 말리기나 감자작업밖에 없으니까 갑갑하네요. ” 신문지를 말아 불을 지피던 부인 최옥희씨 (65) 는 해마다 물가나 밭에서 여름을 알려주던 '뜸부기' 가 그립단다.

'뜸부기' 는 영화속 수인에게도 희망의 새다.

언니를 닮았기 때문에 공장사장인 형부 (한진희 분) 의 하룻밤 노리개가 된 수인. 수인은 형부의 아들을 낳았을 때도, 광부인 남편 (안성기 분) 이 탄광에서 형부를 구하고 숨졌을때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언니가 준 표주박목걸이를 간직하고 '뜸부기' 를 기다린 수인. '뜸부기' 는 동생을 모른체했던 수지의 가슴을 열어 놓는다.

“수인아. 네가 바로 내 동생이야. 다시는 네곁을 떠나지않을거야. ”

평창 = 송명석 기자

▶취재협조 = 최종수 (진부면총무계장, 0374 - 30 - 2607) , 으뜸과 버금 (비디오전문점, 02 - 885 - 2552)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