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스포츠]실업팀 현황(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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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애들이 불안해서 훈련을 못해요…. " 15일 저녁 시내 모음식점에서 모임을 가진 여자실업농구팀 감독들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농구팀 해체사태를 우려하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올해초만 해도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불황의 여파가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 요청 이후 현실로 다가선 것이다.

올해초 한보사태 여파로 제일은행팀이 해체된데 이어 11월에는 코오롱.한국화장품팀이 간판을 내렸다.

최근엔 외환은행의 해체가 기정사실화돼 이제 여자성인농구팀은 현대.삼성.SK.신세계.대웅 등 5개 실업팀과 국민.서울.상업.신용보증기금 등 4개 금융팀으로 줄었다.

외환은행의 해체는 서울은행.상업은행을 자극, 연쇄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선 기업이 몸무게 줄이기에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부도 도미노현상이 스포츠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실업팀들은 내년 2월을 목표로 프로화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프로출범은커녕 24일부터 시작되는 농구대잔치마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잔치 개막 전에 해체팀이 더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자농구는 지금 공황상태다.

정상적인 훈련을 해본지 오래인 은행팀의 한 감독은 "벌써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 선수도 있다" 고 귀띔한다.

농구감독들은 해체된 팀에서 쏟아져나온 '실업자' 들을 하나라도 더 구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화장품 선수들을 신세계로 몰아준 것도 대량 실업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추가로 해체팀이 나오면 감당할 방법이 없어진다.

해체팀들은 '소속 선수들이 원할 경우' 전원 실무요원으로 영입하겠다지만 기존 인력조차 줄이는 상황에서 선수출신 직원들의 해직사태는 불가피하다.

한편 배구쪽도 사정은 농구와 다를바 없다.

고려증권이 지난 9일 무상양도를, 한일합섬이 경비절감을 이유로 지난 10일 해체를 선언하는 등 남녀배구의 대표적 명문팀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

프로화 추진은커녕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고려증권은 감독기관인 증권감독원에서 슈퍼리그 참가경비 지급을 거절, 배구협회의 전액지원 (1억5천만원) 으로 간신히 슈퍼리그에 출전해야 할 처지고 한일합섬은 그나마 참가조차 불가능할 전망이다.

실업농구.배구팀의 해체 사태는 중.고팀들의 사활까지 위협한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취업길이 막히면서 중.고선수들이 대거 훈련을 포기, 종목 자체의 고사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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