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변동폭 제한철폐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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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통화기금 (IMF) 의 자금지원을 받는 대가로 완전 변동환율제 시대가 열렸다.

달러시세가 그날 그날의 수요.공급에 따라 제한없이 오르고 내리는 시대가 닥친 것이다.

완전 변동환율제는 경제학에서 분류하는 외환거래제도의 종착역이다.

일반 상품의 가격이 시장에서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우리나라와 다른나라 돈의 값도 시장에서 아무 제약없이 결정되도록 한다는 것이 완전 변동환율제의 요체다.

사실 이번 완전 변동환율제가 도입되기 전에도 한은은 이미 지난 11월초부터 변동폭 철폐를 재정경제원 등에 요청한 바 있다.

정부는 완전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이유를 "환율변동에 대한 제한으로 외환시장에서 가격기능이 원활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는 점에 두고 있다.

실제로 환율변동폭이 상하 10%로 확대된 후에도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환율이 상한폭까지 상승했고 이중 10, 11일 이틀간은 상한폭까지 상승한 후 거래가 중단되는 등 시장변화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았던 게 사실이다.

또 15일에는 갑자기 하한폭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빚었다.

서울 외환시장이 시장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장외거래가 급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IMF가 긴급자금지원과 관련한 합의서에서 "한국이 취하고 있는 상하 10%의 변동환율제를 축소시키지 말 것" 을 요구한 상황에서 다시 완전 변동환율제로 가게 된 것은 IMF의 요구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낳게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환율제도의 변천사는 우리 경제의 발전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환율제도는 사실상 정부가 결정하는 일종의 관리환율제도였다.

그러다 지난 80년 1월에는 달러뿐만 아니라 엔.마르크화 등 주요 통화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환율을 정하는 복수통화바스켓 방식이 도입됐고 90년 3월부터 다시 시장평균환율제도로 바뀌었다.

환율의 하루 변동폭은 당초 0.4%로 시작됐으나 그후 여섯차례에 걸쳐 그 폭이 확대된 뒤 지난달 20일부터는 하루 10% 변동폭이 유지돼온 것이다.

이제 이같은 변동폭마저 없어진 만큼 환율은 완전히 시장기능에 맡겨지게 됐다.

이웃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들이 이미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고, 다른 상품처럼 한 나라의 돈값도 시장에 완전히 맡기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의 목표라는 점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채권시장을 비롯한 자본시장이 사실상 전면 개방된 상황에서 변동환율제도의 도입은 이른바 핫머니의 유출입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무역협회 신원식이사는 "규제를 철폐해 환율변동을 시장상황에 맡기도록 한 것은 국제사회에 신뢰감을 준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며 "그러나 환율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들이 수출입 업무를 하기가 어려워지는 만큼 빨리 예측가능한 상황이 돼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손병수 기자

<환율제도 변천사>

▶45년 10월: 고정환율제도

▶64년 5월: 단일변동환율제도

▶80년 1월: 복수통화바스켓 방식에 따른 변동환율제도

▶90년 3월: 시장평균환율제도 도입. 시행 초기 하루 환율변동폭은 ±0. 4% ▶91년 9월: 변동폭 ±0. 6%

▶92년 7월: 변동폭 ±0.8%

▶93년 10월: 변동폭 ±1. 0%

▶94년 11월: 변동폭 ±1. 5%

▶95년 12월: 변동폭 ±2. 25%

▶97년 11월20일 : 환율변동폭 ±2. 25%에서 ±10%로 확대

▶97년 12월16일: 하루 변동 상하한폭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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