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대량실업시대 눈앞 재취업 대책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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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예상대로 우리 경제의 금융시장 위기가 노동시장의 위기로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IMF협약에 의한 과도한 차입경영의 조정을 비롯하여 구조조정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도산.정리 및 감량경영 등을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리해고, 임금삭감 그리고 변형근로제 등의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정책과 전략이 강력히 추진될 것으로 여겨진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의 추진 전략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지만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고용' 이슈에서 대조적인 두 가지 방식을 손꼽는다면 우리는 영.미식 고용조정 방식과 독일.일본식 고용조정 방식을 들 수 있겠다.

미국이나 영국은 경쟁주의에 입각하여 '정리해고' 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의 중심대책으로 삼는데 반해, 독일이나 일본은 공동체주의에 입각하여 '직무배분 (job sharing)' 을 중심대책으로 삼고 있다.

즉 미국은 해고에 의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새로운 고용창출을 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독일은 해고 대신에 임금삭감에 의한 고용유지와 창출을 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영.미식 고용조정방식이 더 우월하다고 판단해 이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에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를 통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고 대상자들의 퇴출로와 흡수시장을 충실히 마련해 놓고 실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우리 속담에 "쥐도 도망갈 길을 보고 쫓아야 한다" 는 말이 있듯이 퇴출로를 마련해 놓지도 않고 쫓아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은 국가라기보다는 거대한 규모의 노동시장을 가진 대륙이다.

즉, 직업알선이나 실업보험등 퇴출자를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좋은 제도를 갖춘 노동시장이 마련되어 있고 또 해고.고용이라는 노동관행에 익숙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해고와 고용에 따른 사회.경제적 마찰 등의 거래비용을 많이 지불하지 않고도 고용조정과 창출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국은 미국과 같이 거대하고 효율적인 흡수노동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최근 미국식 해고방식에 의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실시함에 있어 지난 수년동안 해고자의 퇴출로와 흡수 시장 마련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투자를 했는지 잘 알아야 한다.

그 한 예로 영국은 고용창출을 위한 외국투자기업 유치를 위하여 여왕부터 최일선 공무원까지, 그리고 중앙정부에서 최일선 지방정부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편의를 제공하였는지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다.

최종태 교수 <서울대 경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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