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한감정 여전 "한국 파산 안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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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동안 일었던 서울의 반 (反) IMF.반미 (反美) 감정이 일단 추슬러지고 위기 해결을 위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은 비록 뒤늦었으나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반IMF의 반작용으로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시작한 워싱턴.뉴욕의 반응은 심상치 않다.

박건우 (朴健雨) 주미 대사는 지난 주말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가 주최한 리셉션에서 미 의원으로부터 "한국이 그렇게 나온다면 정말 지원을 안할 수 있다" 는 말을 듣고 서울의 공보처장관 앞으로 직접 서신을 띄웠다고 한다.

미.일의 조기 자금지원을 다시 요청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월가는 "한국이 국가부도를 낼지 모른다고 위협하고 있다" 고 받아들였다.

그러자 헤리티지재단.공공정책연구소 (AEI) 등 그렇지 않아도 IMF 지원을 반대해온 워싱턴의 보수적 싱크탱크의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하나쯤 무너져도 미국엔 별 영향이 없다" "그러니 IMF 지원이 돈 낭비라고 하지 않았느냐" 며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에서 반미.반IMF를 외치는데 워싱턴에서 IMF의 순기능이나 한국에 대한 지원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IMF와의 재협상 논란과 서울.제일은행을 살리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월가는 자신들의 엄격한 생존 규범인 '시장원리' 를 아직도 한국이 받아들일 태세가 안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음이 이미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반IMF의 후유증은 이처럼 심각하다.

이들의 생각을 되돌리려면 대통령 후보들이 뒤늦게 IMF협약 준수를 합창하고 특사 파견을 검토하는 것으론 턱도 없이 부족하다.

우선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반외국.반외국인 감정을 다들 다스리지 못하는한 한국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는 근본적으로 회복될 수 없다.

말로만 세계화를 외치고 '국경 없는 자본 이동' 을 외웠지 이번에도 학생들이 외제 사치품 모형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나라에 투자자들이 후한 점수를 줄 리 없다.

서울.제일은행의 처리 문제도 이제 몇년전 영국의 베어링 증권사 파산 때처럼 단 1달러에라도 국내외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파는 방법을 적극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살리자니 신뢰가 더욱 떨어지고, 닫자니 충격이 무섭다면 금융산업에도 외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 오히려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곧 확정될 대통령당선자는 축배 준비에 앞서 국가 신뢰 회복을 위한 차기 대통령으로서의 첫번째 언급과 행동을 미리 생각해 놓아야 한다.

수입품 모형을 불태우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나 금융산업 만큼은 개방해서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설득할 수 있는 인물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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