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사실상 조기출범 청와대 입장…김영삼대통령은 명목상 국가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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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12.18 대선 직후부터 새 대통령 당선자와 함께 국정을 꾸려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자존심 상하지만 金대통령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11일 담화에 대한 여론반응에서 나타났듯 어떤 대책.하소연도 먹혀들지 않고 있다.

외국투자가들도 국제통화기금 (IMF) 지원조건을 지키겠다는 金대통령의 다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金대통령은 이런 권위추락 상황과 국민감정을 잘 듣고 있으며, 결국 통치권을 나누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 첫번째 시사가 담화속의 "당선자와 긴밀히 협의하겠다" 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구절을 넣기 위해 金대통령은 고심했고 진통이 있었다" 고 전했다.

또다른 당국자는 "金대통령은 하야 (下野) 만 빼놓고 당선자가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겠다는 허심탄회한 심경" 이라고 전했다.

金대통령은 13일 3당 대선후보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당선자와의 국정 협력의사를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실에서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현재 구상중인 대략은, 경제쪽은 당선자의 인원배치.정책구상을 전폭 수용해 밀어줄 생각이다.

따라서 당선자가 경제부총리나 장관을 바꿔달라면 응한다는 전언이다.

사의를 표한 이경식 (李經植) 한은총재를 바꾸지 않는 것도 당선자의 후임 인선안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재 운용하는 임의기구인 '경제대책회의' 의 개편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새 당선자가 이 회의를 주재토록 해 '경제 국무회의' 처럼 만든다는 방안이다.

또 인수.인계위 등 권력이동의 관리기구는 권한과 모양새를 새롭게 할 작정이다.

그럴 경우 경제쪽의 실질적 인사.정책의 관리운영은 당선자가 맡고, 金대통령은 헌법.법률의 통치행위로 뒷받침하는 2원적 국정운영 상황이 예상된다.

경제위기로 인한 새로운 '국정 실험' 이다.

청와대는 조기 퇴진론 만큼은 부정적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金대통령이 임기 (내년 2월25일) 전에 그만 두면 헌정중단 사태가 생기고,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금의 총리가 맡는 문제점이 생긴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주도권을 쥘 당선자쪽이 총리자리를 포함한 전면적 '조각 (組閣)' 을 요구할 경우 거부하기 어려울 것임을 이들도 각오한 표정이다.

나라를 거덜낸 지금의 청와대가 임기조항이나 따질 수는 없을 터이고 국민들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당선자가 사실상 정부를 인수, 정책을 수립.집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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