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기자의 JOB 카페] 관행처럼 해오던 시간 외 근무, 한 사람만 시키지 않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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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업들은 면접 때 기업 윤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 “상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승진을 못하거나 소위 말하는 한직으로 전보발령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요구를 들어주겠는가” 같은 것이다. 취업 준비생은 물론이고 직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도 이런 상황과 마주치면 시쳇말로 ‘대략 난감’이다. 실제로 회사나 상사에게 밉보여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하는 근로자가 많다.

불이익 유형도 다양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직장 내 생활자금 대부를 못 받게 한다든지, 장학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복리후생시설 이용을 제한한다. 심지어 관행적으로 계속해 온 시간외 근무 대상에서 제외해 실질임금이 떨어지도록 한다. 이런 경우는 모두 부당노동행위다. 2002년 서울고등법원은 “다른 근로자들은 종전과 같이 시간외 근무를 허용하면서, 특정 근로자에게만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부당한 차별대우”라고 판결했다.

하급자가 수행하던 업무를 주거나 직급에 맞지 않는 보직으로 강등해 결재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도 부당노동행위다. 관례적으로 참석해 오던 회의나 회식에 의도적으로 참석시키지 않는 식의 조치도 마찬가지다. 카드대란으로 금융기관이 곤란을 겪던 200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비슷한 유형의 다툼이 있었다. 원고였던 모 금융기관의 차장은 센터장이나 팀장으로 일하다 점차 과장→대리→평사원급 직급으로 강등됐다. 팀장은 8년 후배인 부서의 팀원이 배치됐다. 좌석은 사무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끝 좌석이었다. 결국 그는 업무 수행을 거부하며 항의했다. 회사는 곧바로 그를 징계했다. 법원은 “사실상 업무에서 배제하고 정당한 대우조차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불필요한 사람으로 다루어 근무 의지를 꺾었다. 이에 항의해 업무를 거부한 것을 두고 징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2004년 대법원 확정)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예컨대 관행처럼 해오던 연장근로를 노조가 거부하면 회사는 난감해진다. 임금을 덜 받고, 법정근로시간만 일하겠다는 근로자의 요구가 일면 타당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불법쟁의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해고와 같은 징계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진다. “노사 합의에 의해 또는 관행적으로 연장근로를 해왔다면, 연장 근로를 거부하는 것은 대기발령이나 해고 처분 사유가 된다”(1992, 2000년 대법원)는 것이다.

회사와 근로자는 신뢰를 깨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힘으로 어느 한 쪽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가 된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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