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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그룹 정인영 명예회장 누구인가…사업열정 넘치는 재계의'不倒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재계의 부도옹 (不倒翁.오뚜기라는 뜻)' 으로 불리며 여러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겨왔던 정인영 (鄭仁永.77.사진)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6일 그룹이 부도를 냄으로써 또다시 극심한 시련을 겪게 됐다.

鄭명예회장은 자신의 형인 정주영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오늘날 현대그룹의 기반을 닦는데 일조했고, 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끝으로 독립해 자신이 62년에 설립한 현대양행을 축으로 독립경영에 나섰다.

80년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던 현대양행 (지금의 한국중공업) 을 신군부에 의해 빼앗겼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던 그는 89년엔 뇌졸중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잇단 액운 속에서도 보란듯이 오뚜기처럼 재기했다.

鄭명예회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기계공장으로 건설중이던 현대양행 창원공장을 완공도 하기 전에 부실기업주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내놨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았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현대양행 안양공장을 ㈜만도기계로 만들어 재기발판을 마련했다.

만도란 상호는 사람은 할수 있다는 뜻인 'MAN DO' 에서 따온 말로 그의 꺾이지 않는 사업열정을 반영한 것. 이후 한라중공업.한라펄프제지등을 신규 설립하는등 중공업 중심의 왕성한 사업활동으로 한라를 단숨에 재계랭킹 12위로 키웠다.

재기 과정에서 鄭명예회장은 현대양행의 악몽으로 정치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고 한다.

95년 비자금 사태가 재계를 뒤덮었을 때 대기업 총수중 유일하게 검찰에 소환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鄭명예회장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1년에 2백일 이상을 해외에 체류하며 조선 수주, 외국 기업과의 합작및 해외 공장 건설등을 앞장서 지휘해왔다.

이같은 그의 왕성한 경영활동은 올초 그룹경영권을 차남인 정몽원 (鄭夢元.42) 회장에게 넘겨준 후에도 계속됐다.

그러나 鄭명예회장이 '중공업 재건의 꿈' 을 이루기위해 건설했던 한라중공업 삼호조선소가 남의 돈을 무리하게 끌어다 쓴 것이 화근이 돼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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