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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그룹 부도 원인과 파장…무리한 '빚 경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대기업 연쇄부도에 대한 위기감이 현실로 나타났다.

한라는 그동안 인원 절반감축등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벌여왔다.

그러나 그 성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자금시장의 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동안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은 다른 은행들과의 협조융자를 통해 회생기회를 주려고 애를 썼다.

또 종금사들도 한라에 대한 여신을 회수하지 않고 만기를 연장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닥친 IMF구제금융에따른 자금시장의 한파 (寒波) 로 금융권의 지원이 계속될 수 없었다.

여기에다 최근 현대그룹이 지원중단 의사를 밝힘에 따라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졌다.

5일 밤에도 정부와 은행은 막판 대안을 찾아보려 했으나 결국 법정관리및 화의 (和議) 신청으로 결론난 것이다.

한라의 부실화원인은 빚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지표만으로 봐도 이미 부실화는 예고돼 있었다.

지난해말 현재 한라의 부채비율은 2천%에 달했다.

국내 제조업체의 평균 부채비율 3백34%의 6배에 가깝다.

또 지난 10월말 현재 한라의 금융권여신은 모두 6조4천7백64억원. 대출금리를 평균 연12%로만 잡아도 한라는 매달 6백50억원의 이자를 갚아온 셈이다.

반면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은 빚보다 훨씬 적은 5조3천억원이었다.

불경기로 매출은 오르지 않는데 빚갚을 날은 꼬박꼬박 돌아오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빚의 구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투자자금이 수익을 올릴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형 장치산업에 주로 집중돼 있었는데도 단기부채를 너무 많이 끌어쓴 것이다.

대출만기가 기본적으로 90일인 종금사의 빚이 전체 여신의 절반에 가까운 2조9천5백억원에 달했다.

단기부채가 많을수록 빚을 얻어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주력기업인 한라중공업은 종금사의 빚을 많이 끌어 삼호조선소에 투자하다 좌초했다.

차입금은 매출액의 1.6배나 되고 자기자본 잠식 규모도 4천3백억원에 달하고 있다.

다른 계열사들도 종금사에서 운전자금을 빌려쓰다 자금시장경색으로 돈줄이 끊겨 주저앉았다.

한라의 최종부도가 확정됨에 따라 계열사들은 일단 법정관리나 화의에 들어간 후 제3자인수나 법원및 채권단의 관리를 받으면서 갱생의 길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라의 좌초로 금융계와 재계에서는 추가부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현금흐름이 나쁜 곳부터 먼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자금시장이 얼어붙은데다 종전처럼 은행권의 협조융자나 대출금의 만기연장도 쉽게 얻어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갈수록 빡빡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IMF구제금융시대에서는 차입경영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는 어느 기업이든 살아남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남윤호·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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