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 외면당한 고건총리…민심은 차가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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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고건 (高建) 총리가 5일 아침 서울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전남 광양 컨테이너부두 준공식 참석을 위해 김포공항역까지 가기 위해서였다.

高총리는 IMF 양해각서 합의 이후 민심동향도 파악하고 시민들을 격려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민심은 싸늘했다.

총리를 알아보고도 인사하거나 자리를 권하는 승객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쪽에서 노골적인 반감이 터져나왔다.

40대의 한 승객은 高총리를 보며 "나라를 이꼴로 만든 사람들…한심하군 한심해" 라고 짜증조의 혼잣말을 했다.

高총리도 이 말을 들었는지 그 승객의 눈길을 피했다.

그러자 이 승객은 그 정도로 '분' 이 풀리지 않은듯 TV카메라를 손짓하며 "쇼하는 건가" 라고 비아냥거렸다.

高총리의 수행원들은 민망한듯 얼굴이 굳어졌다.

대부분 승객들은 高총리와 대화를 나눠보라는 수행원의 권유에 "총리 임기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라며 회피했다.

수행원들은 高총리와 얘기를 나눌 승객을 겨우 찾았다.

高총리는 아파트 경비일을 마치고 귀가중이라는 이우섭 (李愚攝.64) 씨에게 다가가 인사하고 경제위기 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李씨는 "수천억원씩을 축재한 전두환 (全斗煥).노태우 (盧泰愚) 전직대통령때부터 반성해야 했다.

위에서 먹으니까 밑에서도 다 먹는 것 아니냐. 그러니 나라꼴이 제대로 되느냐" 고 따지듯 말했다.

그러자 高총리가 "현 정부도 반성하고 있다" 고 일단 사과했다.

그리고 "요즘 뭐가 가장 걱정이 되느냐" 고 묻자 李씨는 "직장을 잃는 것" 이라고 대답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高총리는 귀빈용 탑승구 대신 일반승객들과 함께 줄을 서서 항공기에 탑승했다.

시민들의 무관심과 냉담함은 마찬가지였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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