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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호흡하는 32명의 단원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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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05면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 무대는 높고 웅장한 계단 위에 앞뒤가 탁 트인 전망 좋은 곳이다. 그런데 오늘같이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저녁에는 칼바람이 기승을 부린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3월의 마지막 토요일 저녁, 국악팝스오케스트라 ‘여민’ 32명의 단원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계단 좌석에 어느새 200~300명의 관객이 모여들었다. 금방 떠나려는 어쩡쩡한 폼이 아니다.

국악팝스오케스트라 ‘여민’

자리 좋은 가운데부터 촘촘히 당겨 앉았다. 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바람이 더 심하게 불었지만 관객은 외려 순식간에 500여 명까지 불어났다. 흥겨운 영화음악 ‘모 베터 블루스’를 빠르게 연주하는가 싶더니 어느덧 해금이 느린 진양조를 리드한다. 이어 대취타가 찢어지는 듯 묘한 음색으로 ‘오 솔레 미오’를 리드하자 관객의 입이 하하 벌어진다. 광장으로 나서 대중과 호흡하는 국악단. 반응은 열렬하다.

“여러분, 추우시죠? 바닥도 춥죠? 죄송해요~. 저희가 연주하는 동안 다 가시면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더 느셨어요.” 이날 지휘를 맡은 김만석(43) 대표의 본업은 경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 국악 파트 18명, 현악 파트 8명, 록밴드 5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상시적인 것으로는 ‘여민’이 유일하다. “그냥 같이 모여 노는 거죠. 이 대규모 악단을 ‘운영’한다고 할 수는 없어요. 재정적으로 감당이 안 되죠. 각자 활동하다가 공연이 있을 때 한 달에 한두 번 연습실 빌려 모이면 만나서 너무 반가운 거죠. 우리 계 놀이 하는 것 같아요.”

스트링 악장 김경명(39·서울심포니 바이올린)씨는 “국악이다 팝이다를 떠나 ‘연주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가 제일 중요했다”고 말한다. 소녀시대·동방신기 등의 노래를 작곡한 밴드 악장 박준하(34·드럼)씨는 “옛날에 장구를 배울 때는 너무 느낌이 달라 실패했었다. 그러다 ‘여민’에 합류해 역량 있는 연주자들과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었고 국악의 느낌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악 악장 한충은(36·KBS국악관현악단 대금)씨는 “왜 우리 악기 가지고 수준 낮게 팝이나 가요를 하느냐는 분도 계시지만 사실 국악기로 팝을 어색하지 않게 연주하기란 상당히 고난도의 작업이다. 사람들이 쉽고 재밌어하는 ‘음악 서비스’에 대한 고민의 장도 된다”고 했다. yeom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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